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에 참여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차세대 우주 망원경 ‘스피어엑스(SPHEREx)’가 우주로 발사됐다. 기존 우주 망원경이 좁은 영역을 자세히 관측하는 것과 달리, 스피어엑스는 온 하늘(전천·全天)을 관찰해 세계 최초의 적외선 3D(차원) 우주 지도를 제작하는 임무를 맡았다. 우주에서 물과 얼음이 있는 천체를 찾고, 우주 탄생의 비밀을 푸는 등 천문학 지평을 넓힐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우주 지도’ 그리는 망원경
우주항공청은 스피어엑스 망원경이 12일 낮 12시 10분(한국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우주군 기지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고 밝혔다. 스피어엑스는 이날 낮 12시 52분 발사체에서 분리돼 고도 약 650㎞의 태양 동기 궤도에 도달했고, 오후 1시 30분쯤 NASA 지상국과 교신에 성공했다. 우주항공청은 “약 37일간 초기 운영 단계로 시험 가동을 수행할 예정”이라며 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스피어엑스는 당초 지난달 28일 우주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발사체 문제와 기상 악화 등으로 8차례나 발사가 연기됐다.
우주 적외선은 지구 대기가 대부분 흡수해 지상 망원경으로는 제대로 볼 수가 없는데,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스피어엑스는 지상에서는 관측하기 어려운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다. 폭과 길이는 3.2m, 높이는 2.6m이며 지름 20㎝의 알루미늄 망원경을 탑재했다.
스피어엑스의 가장 큰 특징은 적외선을 분광(分光) 관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우주 망원경이 4~6개 파장만 관측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스피어엑스는 무려 102개 파장으로 전체 하늘을 볼 수 있다. 102색으로 된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셈이다. 천체의 파장을 분석하면 천체의 거리와 물질 구성, 크기, 밝기 등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스피어엑스는 스마트폰의 파노라마 촬영 모드처럼 망원경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가며 우주의 전 영역을 이어서 촬영한다. 이렇게 수집한 관측 데이터를 지구의 3D(차원) 지형 지도처럼 층층이 분석해 종합하면 우주의 입체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우주의 입체 영상을 제작하는 망원경인 셈이다.
연구진은 우주 지도를 통해 은하계에서 얼음이나 물의 분포를 확인하고,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천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또 은하들의 분포를 측정해 140억년 전 빅뱅 직후 우주가 급팽창한 원인을 밝힐 예정이다.
NASA의 주력인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JWST)’도 적외선 관측 능력이 뛰어나지만, 우주의 약 1%에 해당하는 좁은 영역을 자세히 보는 데 특화돼 있다. 반면 스피어엑스는 상대적으로 낮은 해상도로 우주 전체를 관측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스피어엑스는 초기 운영 단계 이후 약 25개월간 매일 600장 이상의 사진을 촬영하며, 약 10억개의 천체 정보를 담은 3차원 우주 지도 4개를 만들 계획이다.
◇천문연이 광학 성능 테스트 이끌어
스피어엑스는 2019년부터 2억4200만달러(약 3500억원) 규모로 추진된 NASA의 탐사 프로젝트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칼텍) 주관하에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등 12기관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미국이 아닌 외국 기관은 한국천문연구원이 유일하다.
천문연구원은 영하 220도의 우주 환경을 구현하는 극저온 진공 체임버를 개발해 스피어엑스의 광학 및 분광 성능 테스트를 주도했고, 관측 자료를 처리할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협력했다. 한국 측 연구 책임자인 정웅섭 천문연 책임연구원은 “적외선 3차원 우주 지도와 전천(全天) 분광 목록을 통해 우주의 생성과 진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며 “세계 천문학자들이 이를 활용해 다양한 천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팰컨9 로켓에는 스피어엑스와 NASA의 태양풍 관측 위성 ‘펀치(PUNCH)’ 4기가 함께 실려 우주로 발사됐다. NASA가 하나의 발사체로 여러 탑재체를 함께 발사하는 첫 ‘승차 공유(rideshare)’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NASA는 발사 비용을 절감하고, 더 많은 과학 탐구를 진행하기 위해 이 같은 전략을 세웠다. 니키 폭스 NASA 과학임무국 부국장은 “스피어엑스와 펀치를 하나의 로켓에 태워 보내면 우주에서 놀라운 과학 연구를 할 기회가 2배로 늘어난다”며 “먼 은하계에서 우리의 이웃 별(태양)에 이르는 우주를 탐험하는 두 임무 팀에 축하를 보낸다”고 했다.
이날 펀치 위성 4기도 성공적으로 궤도상에 배치됐다. 태양에서 흘러나오는 고에너지 입자 흐름인 태양풍은 오로라를 일으키고 위성통신을 방해하는 등 지구에도 영향을 준다. 펀치 위성은 태양의 가장자리 대기인 코로나가 어떻게 태양풍으로 전환되고, 우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추적한다. 한 위성은 코로나를 관측하는 특수 망원경인 ‘코로나그래프’를 탑재했고, 나머지 세 위성은 태양풍을 더 넓은 시야로 관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