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제 시장을 휩쓴 위고비가 배가 부를 때도 음식을 찾는 ‘쾌락적 식사(hedonic eating)’를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비만 치료제기 포만감을 느끼게 해 식욕을 떨어뜨려 체중을 줄일 뿐 아니라, 배고픔과 관계없이 즐거움으로 음식을 찾는 음식 중독도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콧 스턴슨(Scott Sternson)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의대 교수 연구진은 “동물실험을 통해 쾌락적 식욕의 신경 반응 경로를 찾고, 세마글루타이드 비만 치료제로 쾌락적 식사를 유발하는 도파민 분비 세포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사이언스에 실렸다.
세마글루타이드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성분으로, 음식을 먹으면 소장에서 분비되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을 모방한 물질이다. 위고비는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는 동시에 소화 속도를 늦춰 적은 식사로도 더 오래 포만감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그만큼 체중 감량 효과가 나타난다.
인간의 식욕은 생존을 위해 허기를 달래기 위한 ‘생리적 식욕’과 배고픔과 관계없이 즐거움을 위한 ‘쾌락적 식욕’으로 나뉜다. 쾌락적 식욕이 배가 불러도 음식을 먹는 쾌락적 식욕을 부른다. 심하면 특정 음식에 집착하며 과다 섭취하는 ‘음식 중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UCSD 연구진은 세마글루타이드가 식욕을 조절하는 효과가 쾌락적 식사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이를 동물실험으로 확인했다.
우선 생쥐에게 맛있는 음식과 맛이 없는 음식을 번갈아 주면서 먹는 양과 시간, 횟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했다. 실험 결과, 맛있는 음식을 줬을 때 식사 횟수는 비슷하지만 먹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쥐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쾌락으로 식사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진은 세마글루타이드가 생쥐의 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확인했다. 세마글루타이드 용량을 점차 늘려가면서 쥐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했더니 식사량과 식사 시간, 도파민 분비 세포의 활동이 이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파민 분비 세포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도파민을 분비해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세포다. 세마글루타이드가 음식이 주는 쾌락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다만 생쥐에게 반복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자 세마글루타이드의 효과는 빠르게 감소했다. 약물에 대한 저항성인 내성(耐性)이 발생해 쾌락적 식욕이 이전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도파민 분비 세포의 활성을 억제하자 다시 쾌락적 식욕이 감소했다.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식욕 연구는 크게 배고픔과 쾌락으로 나뉜다”며 “최근에는 비만 치료제의 쾌락 조절 능력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앞서 최 교수는 지난해 6월 GLP-1 유사체가 뇌에서 시상하부 가운데와 등쪽에 있는 신경세포를 통해 포만감을 높인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의료계는 음식 중독도 중독 질환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나오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의 14%, 청소년의 12%가 음식 중독을 앓고 있을 정도다. 음식 중독은 비만, 위장 장애 등 대사질환을 유발하기도 해 최근에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나 스몰(Dana Small) 캐나다 맥길대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에 같이 실린 논평 논문에서 “쾌락적 식사는 과식을 통해 비만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라며 “이번 연구로 세마글루타이드를 이용한 비만 치료의 보조 요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장 세마글루타이드가 음식 중독 치료제로 사용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음식 중독이 나타나는 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사람마다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최형진 교수는 “식사로 얻는 쾌락이 줄면 어떤 사람은 식사량을 줄이겠지만, 다른 사람은 쾌락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식사를 할 수도 있다”며 “이는 사람마다 어떤 반응으로 나타나느냐에 달린 차이”라고 설명했다.
참고 자료
Science(2025),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t0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