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으로 개발돼 팬데믹 종식에 결정적 역할을 한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의 체내 유입 및 작동과 저해 원리를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유전자 편집(유전자 가위) 기술로 2만개에 달하는 유전자를 테스트해 mRNA 백신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데 관여하는 물질과, mRNA 백신의 기능을 저해하는 단백질을 찾아낸 것이다. 다양한 질병으로 mRNA 백신을 확장하는 데 관건으로 꼽혀온 체내 유입과 효능 유지 등의 핵심 요인을 규명했다. 이번 연구가 mRNA 백신 상용화를 앞당기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리보핵산(RNA) 분야 석학으로 꼽히는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장. 김 단장은 mRNA 백신의 세포 내 전달, 분해를 제어하는 단백질을 찾아내고 그 작동 원리를 최초로 규명한 연구 결과를 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코로나 백신 작동 원리 최초 규명”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연구진은 “mRNA 백신의 세포 내 전달과 분해를 제어하는 단백질군을 찾아내고, 그 작동 원리를 최초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4일 게재됐다.

mRNA는 DNA의 유전 정보를 복사한 뒤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리보솜에 이를 전달한다. 인체를 이루는 단백질의 설계도를 공장에 전달하는 셈이다. 코로나 백신은 이 원리를 이용해 바이러스 단백질을 만드는 mRNA를 체내에 주입해 항체 생성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10년 이상 걸리는 백신 개발 과정을 코로나 백신은 약 11개월로 줄일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래픽=송윤혜

화이자, 모더나 등은 mRNA를 나노 지질층으로 둘러싸고, mRNA 염기 중 하나를 변형해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다. 다만 이 백신이 어떤 물질의 도움으로 세포에 들어오고, 어떤 요인으로 mRNA가 방출되고 유지 또는 분해되는지 등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었다.

이번 연구팀은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세포들의 유전자를 1개씩 제거하는 방식으로 총 2만개의 유전자 기능을 시험했다. 녹색 형광을 띠게 하는 mRNA를 각 세포에 보내, 어떤 물질이 mRNA를 돕거나 방해하는지 하나하나 찾아낸 것이다. 실험 결과 세포 표면에 있는 당단백질의 일종인 ‘황산 헤파란’이 mRNA의 세포 내 유입을 촉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mRNA는 세포 안 소포체(小胞體)로 유입되는데, V형 ATP 가수분해효소(V-ATPase)가 소포체 막을 파열시켜 mRNA가 세포질로 방출돼 작동할 수 있게 한다는 것도 연구팀이 알아냈다.

여기에 더해 외부에서 주입된 mRNA에 대한 면역 체계와, 어떻게 mRNA 백신이 이를 뚫고 제 기능을 하는지도 규명됐다. 세포질 내 단백질인 ‘TRIM25’가 외래 mRNA를 침입자로 인식하고, 다른 절단 효소 등과 mRNA에 결합해 분해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일반 mRNA는 TRIM25에 빠르게 분해된 반면, 코로나 백신처럼 염기가 변형된 mRNA는 TRIM25를 회피하고 단백질을 정상적으로 생성시켰다. 연구팀은 “mRNA 백신이 우리 몸의 면역을 피해 안정적으로 작동한 원리가 밝혀진 것”이라고 밝혔다.

◇암 백신 등 차세대 백신 개발 탄력

앞서 코로나 팬데믹 때 mRNA 백신의 성능을 향상하는 데 기여한 학자들은 202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당시 수상자들이 밝히지 못한 불분명한 작동 기전을 이번 연구진이 풀었다는 점에서 과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며 노벨상 수상 후보로 종종 거론됐던 김빛내리 단장에 대한 관심도 커질 전망이다. 또 이번 연구 성과가 차세대 mRNA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mRNA를 돕는 물질을 활성화하는 기술을 개발해 mRNA의 전달 효율을 높이고, mRNA 파괴 물질을 회피하는 기술을 개발해 안정성을 증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빛내리 단장은 “mRNA의 안정성과 단백질 생산 효율 등을 높일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연구”라며 “향후 연구를 통해 새로운 mRNA 백신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mRNA 기술은 차세대 신약 플랫폼으로 각광받고 있다. 모더나는 지난해 호흡기 세포 융합 바이러스(RSV) 백신을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았고,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악성 피부암인 흑색종, 폐암 등에 대한 mRNA 기반 ‘암 백신’ 역시 대형 제약사들이 앞다퉈 개발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프레시던스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mRNA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5년 208억3000만달러(약 30조5000억원)에서 2034년 426억4000만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mRNA(메신저 리보핵산)

DNA에 저장된 유전 정보를 복사해 세포 안의 단백질 공장인 리보솜에 전달하는 물질. 리보솜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단백질을 만든다. mRNA는 인체를 이루는 단백질을 만들기 위한 임시 설계도이자 지시서 역할을 한다. mRNA 백신은 이 원리를 이용해 바이러스 단백질을 만드는 mRNA를 체내에 주입해 항체 생성을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