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훌라 계곡의 한 동굴에는 박쥐 2000마리가 살고 있다. 이들은 해가 지면 동시에 동굴 밖으로 뛰쳐나온다. 근처의 곤충을 사냥하러 가는 것이다. 이때가 인간으로 치면 일터로 출근하는 ‘러시아워(rush hour)’인 셈이다. 동굴 입구는 3㎡에 불과한데 이를 통과하는 2000마리 박쥐의 속도는 시속 50㎞에 이른다. 출근길 추돌 사고가 잦을 법도 한데, 서로 충돌하는 박쥐들은 거의 없다. 비결이 무엇일까.
독일 막스 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와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박쥐 떼에 위치 추적 장치와 초음파 마이크를 부착했다. 박쥐 떼가 동굴을 빠져나올 때 실제로 어떤 주파수의 초음파를 내고 어떻게 이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박쥐는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 초음파를 내고, 그 소리가 벽이나 다른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걸 듣는다. 이렇게 되돌아온 소리(반향음)를 해석해 물체가 얼마나 멀리, 어디에,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반향정위(echolocation)’라고 한다.
그런데 수천 마리 박쥐가 동굴 밖으로 나가면서 동시에 초음파를 내면, 이 소리들이 서로 간섭하면서 반향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연구진은 ‘칵테일파티 악몽’이라고 소개했다. 시끄러운 파티장에서 특정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힘든 상황을 빗댄 용어다.
이번 연구진의 실험에서 동굴 입구에서는 약 94%의 반향음이 간섭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5초 후에는 박쥐들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지며 음향 간섭이 대폭 줄어들었다. 그 사이 박쥐들은 더 높은 주파수를 내는 방법으로 가장 가까운 동료 위치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반경 3m 이내에 있는 가장 가까운 반향음만 인식하고, 나머지 음향 정보는 과감히 무시한 것이다.
기존 연구는 박쥐가 서로 다른 주파수를 사용하거나 타이밍을 달리해 초음파 간섭을 피한다고 추정했는데, 박쥐의 회피 전략은 예상보다 단순하다는 것을 이번 연구가 밝혀냈다. ‘가장 가까운 박쥐 한 마리를 피하기’가 핵심 전략이었다는 얘기다.
이를 인간 사회에 적용한다면, 때로는 모든 정보를 분석하려는 복잡한 알고리즘보다 현실적으로 인식 가능한 정보만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