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한 실험실. 머리에 가는 광섬유 케이블이 연결된 쥐 한 마리가 먹이를 먹고 있었다. 연구진이 스위치를 켜자 광섬유에서 푸른 빛이 나왔고, 즉시 쥐가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듯 왼쪽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은 빛이 오른쪽 뇌의 운동 회로를 자극했다는 뜻이다. 빛을 끄자 쥐는 순식간에 행동을 멈췄다. 빛으로 뇌의 활동을 조절하는 ‘광유전학’ 기술이 동물에게 성공적으로 적용된 순간이었다.
이 연구를 이끌어 ‘광유전학의 대부’라고 하는 칼 다이서로스 스탠퍼드대 생명공학·정신의학 교수가 지난달 제18회 아산의학상을 받고자 한국을 찾았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본지와 만나 실험 성공 당시를 회상하며 “다들 ‘불가능한 연구에 매달리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가능성이 보였고, 끝까지 도전하고 싶었다”며 “부정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시도해 세계에 광유전학 기술을 선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광유전학(optogenetics)은 빛(opto)과 유전학(genetics)을 결합한 신경과학의 한 분야로 분류되며, 빛으로 세포 활동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기술을 뜻한다. 주로 뇌 신경세포(뉴런)의 활동을 제어하는 데 사용되고, 신경 질환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인 ‘채널로돕신’을 활용해 동물 세포의 활동을 빛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가설을 실험으로 입증해 광유전학의 토대를 세웠다.
광유전학이 다양한 동물의 행동을 제어하고, 신경·정신 질환 치료에도 응용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매년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이번 인터뷰에서 “살아있는 동물에 광유전학을 최초로 적용한 2007년 실험에 성공한 뒤 독일에서도 비슷한 연구를 시도했지만 중간에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과학적 발견에는 남들이 안 된다고 해도 끝까지 해보는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광유전학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는 금속 전극이나 광섬유를 뇌에 삽입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뇌 세포 손상이나 면역 반응이 발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전자 전달 방식이 정교해져 더 정밀하고 덜 침습적인 방식으로 빛 자극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뇌에 전극을 심는 뉴럴링크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다이서로스 교수는 “뉴럴링크는 주로 신경 신호를 읽고 해석하는 기술이지만, 광유전학은 신경세포의 활동 자체를 직접 조절할 수 있다”며 “신경 질환이나 정신 질환 치료에는 광유전학이 더 적합한 접근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앞으로 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광유전학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환도 많아질 것”이라며 “특정 뉴런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약물 형태로 발전시킨다면, 알츠하이머 같은 질환의 증상을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제자 중에는 정광훈 MIT(매사추세츠공대) 교수, 이진형 스탠퍼드대 교수, 김성연 서울대 화학부 교수 등 한국인도 다수 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한국 과학기술계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나아가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문화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계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실패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광유전학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특정 세포에 발현시켜 세포의 활동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기술. 빛을 쬐는 것만으로 신경세포를 촉진하거나 억제할 수 있다. 주로 뇌 신경세포(뉴런)의 활동을 제어하는 데 사용되고, 뇌과학 연구와 신경 질환 치료에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