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서울역 광장 흡연구역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뉴스1
그래픽=정서희

‘500억원대 담배 소송’ 2심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이 소송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암에 걸린 흡연자를 치료하느라 발생한 진료비를 지급하라”며 담배 회사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제기한 것으로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지난 2023년 8월 31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담배와 암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주제로 열린 담배소송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스1

21일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6-1부(재판장 김제욱)는 건보공단이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소송 최종 변론 기일을 다음 달 22일로 잡았다. 재판부가 최종 변론을 마치고 선고 날짜를 정하면 그날 담배 소송 2심 결론이 나온다.

◇“흡연으로 암 발생” vs “인과 관계 인정 안돼”

담배 소송은 201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건보공단은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533억원대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폐암(소세포암·편평세포암)과 후두암(편평세포암)에 걸린 환자 3465명에게 건보공단이 2003~2013년 10년간 진료비로 부담한 금액을 반환하라는 것이었다.

핵심 쟁점은 흡연과 암 발병 사이 인과 관계가 있는지, 담배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다. 1심 판단은 건보공단이 소송을 제기한 지 6년 만인 2020년 11월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재판장 홍기찬)는 “흡연과 암의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담배 회사 손을 들어줬다. 가족력, 개인 습관, 주변 환경이나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암이 발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그해 12월 항소했고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갔다. 건보공단은 2심 재판부에 폐암 환자 A(86)씨의 진술서를 새롭게 제출했다. 건보공단을 대리하는 최종선 대륙아주 변호사는 “A씨에게 흡연 이외에 별다른 폐암 발생 요인이 없다는 점을 증명하려는 취지”라고 했다. A씨의 진술서는 재판 증거로 채택됐다.

A씨는 “20대 때부터 수십 년간 흡연했다”고 했다. 1990년대 후반 담배를 끊었지만 2010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 암 가족력은 전립선암(본인·형) 외에 없었고, 금연 후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으며 운동도 자주 했다고 한다. 과거 피운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는 뜻이다.

담배 소송 1심은 타르와 니코틴 성분을 두고 책임 소재도 다퉜다. 건보공단은 1심 재판 당시 담배 회사들이 유해 성분인 타르와 중독을 유발하는 니코틴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담배 맛과 향을 좋게 하기 위해 첨가제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담배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소비자는 담배를 피며 니코틴이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는 약리(藥理) 효과를 의도한다”면서 “니코틴을 제거하면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니코틴은 담배라는 제품의 특성이니 담배 회사에 그 성분이 있다고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美는 담배 회사서 거액 합의금 받아

현재 한국 대법원은 담배를 피우다 질병에 걸리면 흡연자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 2014년 4월 대법원은 앞서 30명이 흡연으로 암에 걸렸다며 KT&G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소송에서 담배 회사 손을 들어줬다. 흡연자가 폐암에 걸렸어도 100% 담배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개인 대신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대법원 판결 직후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따랐다.

미국은 반대로 주(洲)정부 차원에서 담배 소송을 제기해 합의금을 받은 사례가 있다. 미국은 1998년 미시시피를 포함한 50개 주 정부들이 “흡연자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지출한 진료비를 지급하라”며 필립모리스와 R.J.레이놀즈같은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460억달러(약 350조원)를 받아냈다.

미국에서도 1950년대 담배 소송이 처음 제기될 때만 해도 담배 회사들이 승소했다. 그러나 1994년 담배 회사 연구원들이 담배의 중독성과 위해성을 알리는 양심 선언을 했고, 담배 회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의료계는 건보공단이 담배 소송을 진행하며 국민들에게 금연을 알리는 효과도 있다고 본다. 건보공단은 다음 달까지 담배 소송 100만 범(汎)국민 지지 서명 운동을 한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2심 판결을 앞두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취지”라고 했다. 담배 회사들은 “2심 재판에 성실히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