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놀장 주문이요!”
16일 서울 강북구 수유전통시장 한 반찬가게에서 스마트폰 음성 알림이 울려 퍼졌다. 이 가게 주인 신인순(70)씨는 스마트폰을 확인하더니 “오징어젓 5000원어치 배달 주문 들어왔다”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상품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놀장’(놀러와요 시장)이란 로고가 적힌 조끼를 입은 직원이 한손에는 스마트폰 앱을 들고, 한 손으론 쇼핑카트를 끌면서 나타났다. 이 직원이 수유시장 곳곳을 돌며 모바일로 주문받은 상품을 모아 주문자에게 배송한다. 카트에는 이미 삼겹살 1근, 부대찌개 2인분 등을 담은 봉투가 실려 있었다. 직원에게 비닐봉지를 건넨 신씨는 “코로나가 터지고 매출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하루에 많게는 5~6건씩 배송 주문이 들어오니까 매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54년 전통을 자랑하는 수유전통시장이 코로나발 비대면 추세에 발맞춰 ‘모바일 시장’으로 변신에 도전하고 있다. 수유시장은 지난 4월 서울 전통시장 가운데 처음으로 모바일 장보기 서비스인 ‘놀장’을 도입했다. 놀장은 서비스에 참여하는 시장 상인들이 파는 농수산물, 축산물, 분식 등을 모바일 앱으로 판매하고, 2시간 이내에 배달해 주는 서비스다.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는 특정 시장 상인이 파는 음식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놀장은 시장 내 여러 상인에게 산 상품을 한꺼번에 모아서 배송해 주는 ‘비대면 장보기’에 더 가깝다. 현재는 상인들에게 별도 배달 수수료도 받지 않고 있다.
◇어르신만 찾던 시장에 30·40대 손님 늘어나
수유시장에선 85개 상인 중 53곳이 놀장에 참여했다. 도입 초기엔 40곳이 참여했는데, 온라인 배송이 매출에 도움이 되는 모습을 본 다른 상인들도 뒤따라 합류했다. 6월엔 놀장 하루 판매 실적이 24만원이었는데 9월에는 63만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초기엔 분식류나 빵류를 배달하는 비율이 높았는데, 점차 축산물이나 수산물 판매도 늘어나면서 그야말로 ‘모바일로 장을 보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2대에 걸쳐 70년 가까이 김밥집을 운영하는 이현숙(62)씨는 “한때는 하루에만 김밥을 몇 천줄씩 팔았는데 지금은 경기도 안 좋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매출이 많이 줄었다”며 “그래도 한 번씩 들어오는 놀장 배달 주문이 아주 효자 노릇을 한다”고 했다. 족발집을 운영하는 허영난(38)씨는 “처음엔 낯선 서비스라 참여하지 않았다가 주변 상인들이 배달 서비스를 통해 매출을 올리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뒤늦게 합류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후부터 젊은 손님 유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로 50~60대 여성이 주 고객이었는데, 놀장 이용 고객 비중은 30대 여성이 30.5%, 40대 여성이 27.5%로 가장 많다. 수유전통시장 황영주 사무처장은 “전통시장엔 항상 50~60대 여성 손님이 많았는데 비대면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새로운 고객층이 창출되는 모습이 고무적이다”고 했다.
◇정부 “2025년까지 디지털 전통시장 500곳”
시장들도 결국 비대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걸 안다. 이미 전통시장 곳곳에서 언택트 배송 서비스를 도입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서울 암사시장, 화곡시장, 경기 광명시장 등 역사 깊은 시장들은 이미 모바일 배송 서비스를 도입해 적응 중이다. 놀장 박재현 상무는 “사업 초기엔 수도권 시장 위주로 서비스를 집중하려 했는데, 지방 시장들에서 먼저 배달 서비스를 도입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면서 판이 커졌다”고 했다. 놀장은 서울, 경기, 울산, 전남 등 전국 28개 시장과 서비스 계약을 맺었다.
정부도 전통시장의 온라인 배송 문화 도입을 적극 돕겠다고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온라인 배송 서비스 도입 비용 등을 지원해 2025년까지 디지털 전통시장 500곳 조성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