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현국

경남 양산에서 36년간 아동용 물놀이 용품과 장난감을 생산하는 이충남(63) 대표는 올 들어 생산량을 작년의 절반으로 줄였다. 알리·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를 통해 국내에 들어오는 저가 장난감 공세로 매출이 더 줄어든 탓이다. 코로나 팬데믹 전 45명이던 직원은 이제 10명만 남았다. 그는 “저출생으로 장난감 수요는 계속 줄어드는데 중국 직구업체 공세까지 겹치니 내수(內需) 시장에선 이제 희망이 안 보인다”며 “해외 시장을 새로 뚫지 않으면 회사를 더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했다.

국내 중소 완구업체들이 중국 이커머스 업체의 공세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저출생으로 가뜩이나 시장 규모가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 때문에 중국 직구업체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에 일부 중소 완구업체들은 ‘뽀로로’ ‘핑크퐁’ 같은 국산 캐릭터 인기를 발판 삼아 해외 시장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그래픽=김현국

◇中 직구 공세에 국내 완구업계 ‘휘청’

3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가 알리·테무 같은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개별 구매한 아동·유아용품은 지난해 535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427억원보다 25.3% 늘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완구거리에서 42년째 장난감 판매점을 운영하는 송모(68)씨는 “매장에서 직접 상품을 사는 수요가 몰라보게 줄었는데, 가끔씩 들르는 손님도 ‘인터넷보다 왜 이렇게 비싸냐’며 빈손으로 가게를 나간다”며 “마진을 거의 안 남기고 다음 달부터 판매가를 20%씩 낮출 계획”이라고 했다.

알리에서 중국산 장난감과 액세서리를 대량으로 구입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김모(49)씨는 “국내에서 도매가 2000원대인 액세서리가 알리에서는 200원도 안 한다”고 말했다.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알리·테무 등 중국발 직구제품이 들어오기 시작한 작년 이후로, 안 그래도 힘들던 완구 도매상들의 매출이 30% 정도 더 줄었다”고 말했다.

중국발 저가(低價) 완구의 공세가 본격화하면서 폐업하는 완구 업체도 늘었다.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 소속 회원사는 2022년 150곳에서 지난해 133곳으로 줄었다. 조합 관계자는 “폐업하는 업체 대다수가 중국발 직구 때문에 매출이 급감했다고 토로한다”며 “연 매출이 10억원이 안 되는 업체들은 연회비 3만원을 내기도 버겁다며 조합을 탈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완구업체 대표는 “국내 업체들은 기본적으로 5년마다 제품마다 수백만원의 안전검사 비용까지 들다 보니 안전검사를 받지 않는 중국 제품과의 가격 차이가 더 벌어진다”고 말했다.

◇유럽 등 해외 진출 시도하는 업체들

경기 광주에서 15년간 완구업체를 운영해 온 박진현(51) 대표는 최근 유럽 시장으로 사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아닌 다른 아시아 국가로 생산 라인을 다변화하려는 독일의 한 완구 회사로부터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견적 의뢰를 받았다. 지난 2년 새 국내 매출이 40% 넘게 줄었다는 그는 “내년 2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리는 완구 박람회에 뽀로로, 핑크퐁 같은 국산 캐릭터를 활용한 장난감을 출품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어린이용 완구를 유럽에 수출한 규모는 2022년 1916만7000달러에서 지난해 2345만8000달러로 1년 만에 약 22.4% 늘었다. 업계에서는 지식재산(IP) 기반 캐릭터 상품과 교육용 완구에 대한 유럽 현지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완구 수출액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독자적인 캐릭터와 상품으로 품질 경쟁력을 높여야 해외에서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소재규 한국완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유럽·미국 시장도 이미 중국과 동남아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진출해 있는 상태”라며 “유럽 국가에서 수요가 많은 교육용 완구 시장이나 해외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 새로운 캐릭터 개발에 투자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