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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속 위생 필수 아이템 코팡 크림·겔 개발한 EHB스튜디오 송형준 대표. /더비비드
코피는 과로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영화·드라마에서 공부나 일을 열심히 하느라 며칠 밤을 새운 사람이 갑자기 코피를 흘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피로하면 코피가 쉽게 날 수 있다. 혈관이 수축하고 코점막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EHB 스튜디오 송형준(44) 대표는 3일에 한 번꼴로 코피가 났다. 코피가 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사실 과로가 아니었다. 문제는 비염이었다. 지독한 비염에 시달리다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제품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송 대표를 만나 코피와 이별한 이야기를 들었다.
◇콧속이 건조하거나 막힐 때
EHB스튜디오는 코 케어 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브랜드 ‘더티런드리’를 운영하고 있다. ‘코팡 크림’은 자연 유래 성분으로 만든 코보습 크림이다. 크림이 묻은 면봉을 코안에 넣고 점막을 닦아주면 된다. 크림은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풍부한 작두콩추출물,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은 수세미오이추출물 등 코에 좋은 성분으로 만들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향료나 유해 성분은 배제했다.
‘코팡겔’의 주 성분은 특허 물질인 액상 플라스마다. 액상 플라스마는 항균, 피부 진정, 피부 재생에 도움을 주는 물질이다. 액상 플라스마의 표적 살균 기능으로 막힌 코를 시원하게 뚫어준다. 겔 제형으로 콧속에 부드럽게 밀착한다. 유칼립투스 오일과 멘톨의 조합으로 바르는 즉시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타MD의 새로운 꿈
2007년 한국외대 인도네시아어학과를 졸업했다. 제일모직 패션 MD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다. 이후 올리브영, GS홈쇼핑, 롯데 롭스, CJ ENM 등에서 경력을 이어갔다. “2년 혹은 그보다 짧은 기간에 이직했습니다.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롯데 롭스예요. 2014년부터 약 4년간 상품팀장을 맡아서 PB상품이나 글로벌 브랜드 소싱을 맡았죠. MD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경험했습니다.”
마지막 회사는 색조 화장품 수입 전문 회사였다. “글리터 화장품으로 유명한 ‘스틸라’나 탈모 증상 완화 헤어용품으로 알려진 ‘웰라 컴퍼니’의 국내 론칭을 담당했습니다. 연예인 모델을 쓸 돈이 없어서 상세 페이지만 한국 스타일로 바꿨습니다. 주로 면세 시장을 공략했어요. 전략이 제대로 먹혔습니다. 스틸라의 연 매출이 80억원에서 400억원으로 뛰었어요.”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면서 프로젝트는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그 무렵 새로운 꿈을 키워나갔다.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직접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아이템은 일찌감치 정했어요. 지독한 비염 때문에 평생을 고생했거든요. 엄숙한 회의 자리에서 킁킁거리다 눈치를 보기도 하고, 코가 건조해서 2~3일에 한 번씩 코피를 흘릴 정도였습니다. 병원에 가도 그때뿐이고, 코에 직접 뿌리는 스프레이는 내성이 생길까 두려워 손이 잘 가지 않았죠. 비염을 완전히 고치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빠르게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제품이 필요했습니다.”
◇코팡 크림·겔 개발 노트
1. 명확한 콘셉트를 잡아라
2021년 6월 EHB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콘셉트 설정이다. “제품에 이야기가 덧입혀지면 사람들의 뇌리에 쉽게 각인되고 더 오래 기억됩니다. 이야기에는 캐릭터가 있어야겠죠. 결벽증이 있는 프리키(Freaky)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프리키가 일하는 곳은 ‘더티런드리’라는 세탁소예요. 프리키가 느끼는 일상의 고민을 해결해 줄 제품으로, 비염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코팡 크림’을 기획했습니다.”
브랜드 이름 ‘더티런드리’, 제품명 ‘코팡 크림’까지 완성했다. 다음으로 포토샵을 켰다. “유튜브 영상들을 선생님 삼아 배워본 적도 없는 포토샵으로 캐릭터 이미지와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노란색 사각형 안에 파란 동그라미가 그려진 그림이에요. 세탁기와 투입구의 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2. 만족할 때까지 거듭 테스트하라
코팡 크림 제품의 형태는 단순해야 했다. “집은 물론 사무실이나, 여행 중 비행기 안에서도 사용하기 편했으면 했어요. ‘크림 제형이 발라진 면봉’이어야만 했던 이유죠. 크림을 만들 때는 화학 성분은 일절 배제하고 작두콩 추출물, 수세미오이 추출물 등 천연 유래 성분으로만 배합했습니다. 면봉으로 코 안을 닦는 순간 콧속에 있던 이물질이나 먼지들을 닦아주면서 동시에 보습 성분이 점막을 촉촉하게 유지해 주도록 했죠.”
관건은 면봉의 크기였다. “기존 면봉은 너무 작아서 콧속을 여러 번 닦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재채기가 나기도 하더군요. 시중에 일명 ‘왕면봉’이라 불리는 큰 면봉도 있었지만 코에 넣기엔 너무 컸어요. 일반 면봉과 왕면봉의 중간 크기의 면봉 샘플을 20개 정도 만들어 실험을 거듭했습니다. ‘이거다’ 싶은 확신이 들기까지 꼬박 6개월이 걸렸습니다.”
3.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2022년 3월 면봉 타입의 코팡 크림을 정식 출시했다.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온라인몰 판매 평점을 보니 1점부터 5점까지 다양했습니다. 치료의 목적을 기대한 분들은 실망이 큰 것 같더군요. 반대로 천연 성분만을 활용해 증상을 빠르게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리뷰를 바탕으로 상세 페이지 내용을 업데이트했어요.”
제품도 업데이트가 필요했다. “제가 가진 비염의 증상은 ‘건조함’이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코막힘’으로 불편함을 겪고 있다며 코를 뚫어줄 제품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코팡겔’의 탄생 비화죠. 상쾌한 느낌을 주기 위해 유칼립투스 추출물이나 페퍼민트 등의 성분으로 겔 타입의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또 천연 성분이라 영유아를 위해 구입한 분들도 많았는데요. 면봉이 너무 크다며 제형만 용기에 담아달라는 댓글이 꽤 보이더군요. 코팡 크림과 코팡겔을 모두 용기형으로도 출시했죠. 그렇게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라인업을 완성했습니다.”
4. 국내 생산의 장점을 살려라
코팡 크림과 코팡겔은 전량 국내에서 생산한다.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이다. “많은 기업들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걸 선호합니다. 아무래도 생산 단가가 더 저렴해지기 때문이죠. 코팡 크림·겔은 해외에서 만들어볼까도 생각해 봤는데요. 제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제품은 해외에서 생산한다고 해서 단가가 크게 낮아지지 않더군요. 오히려 관세가 붙고, 품질을 수시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제품이라도 개별 제품마다 생산 공장을 다르게 했다. “코팡 크림은 MD 시절부터 알고 있던 곳입니다. 코팡겔에는 특허 성분인 액상 플라스마가 들어가는데요. 특허권을 가진 공장에서만 제조할 수 있어 그곳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최근에는 방향제를 개발하고 있는데요. 4~5곳의 공장에서 샘플을 받아보고 한 군데를 결정했습니다.”
◇10억원보다 소중한 5억원
EHB스튜디오의 연 매출은 2023년 10억원, 2024년 5억원을 기록했다. “숫자만 보면 매출이 줄어든 것 같죠. 엄밀히 말하면 10억원은 코팡 크림으로 만든 매출이 아닙니다. 조급한 마음에 MD 경력을 살려 외주 일감을 받았어요. 홈쇼핑 방송 준비를 돕고 매출의 몇 퍼센트를 수수료로 받는 식이었죠. 문득 ‘진짜 내가 하고 싶던 일이 아니었구나’를 깨닫고 더티런드리에 더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프리키 외에 다른 캐릭터를 구상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연결해 제품군 확장을 계획했죠.”
코를 킁킁거리는 습관은 어느샌가 사라졌다. 더 이상 코피도 나지 않는다. “코팡 크림이나 코팡겔이 비염을 치료한다고는 할 수 없어요. 스테로이드제나 약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꾸준히 사용하면 코가 건조하거나 막혀서 생기는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습니다. 지독한 비염을 앓고 있는 친구들끼리 만날 때마다 우스갯소리로 ‘비염 치료제 개발하면 노벨상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코팡 크림과 코팡겔이 제 코를 돌봐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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