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약국 안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간혹 ‘동물의약품’ 코너가 보일 때가 있다. 구충제나 심장사상충약, 연고 등 자주 쓰이는 동물용 의약품이 모여 있다. 일반 약국에서 사람을 위한 약 외에 동물을 위한 약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낯설다. 동물의약품은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병원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펫팜(Pet Pharm)윤성한(53) 대표는 반려동물 의약품 정보의 비대칭성에 주목했다. 펫팜은 반려동물 의약품, 영양제, 간식 등을 동물 약국에 B2B(기업간거래)로 유통하고 있다. 펫팜 출범 이후 동물 의약품을 취급하는 약국은 5년 새 4763곳(2020년)에서 1만2400곳(2025년),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중 펫팜의 거래처는 약 5700여 곳에 달한다. 윤 대표를 만나 동물 약 쉽게 구하는 방법을 들었다.
◇동물 약국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1995년 대한전선 전선재료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가장 전도도가 좋은 건 순동(順銅)이지만 환경에 따라 소재를 섞어야 할 때가 있어요. KTX 고속철은 순동이 빨리 닳기 때문에 합금동을 쓰고, 철탑 사이를 연결하는 전선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죠. 일에 재미를 붙일 때쯤 IMF 외환위기 사태로 인해 연구소가 없어졌습니다. 공장 지원 부서로 발령이 났어요. 더이상 비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퇴사 후 새로 찾은 직장은 보험회사였다. 영업 사업으로 새로운 경력을 쌓아나갔다. “개인이나 법인의 자금 컨설팅을 했어요. 기본급이 적은 대신 영업하는 만큼 성과급이 두둑히 주어졌습니다. 17년간 일하면서 한국MDRT협회(보험·재무 설계사로 이뤄진 전문가 협회)에서도 활동했죠. 2017년쯤 친구가 창업을 한다기에 자금 관리 부분에서 한마디씩 조언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CFO(최고재무책임자)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친구가 창업한 회사는 원료의약품 제조 스타트업 코피텍이었다. “낯선 의약품 분야와 친해지기 위해 대학약사회에서 발간하는 ‘약사 공론’이란 신문을 날마다 읽었습니다. 계속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어요. ‘동물약’이었죠.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동물 의약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라는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됐습니다.”
파면 팔수록 의문이 더해졌다. “당시만 해도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만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어요. 심장사상충 약 하나 먹이려고 시간 들여 병원을 찾고, 진찰비를 지불하는 경우도 많았죠. 동물 의약품을 취급하는 이른바 ‘동물 약국’이 있지만 막상 방문해보면 동물 약이 없어 헛걸음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동물 의약품 유통 과정 속 막힌 혈을 뚫어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조사와 약국 사이의 연결 고리
2019년 12월 동물 의약품 전문 유통사 ‘펫팜’을 설립했다. “동물 의약품을 취급하는 약국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뒀습니다. 일단 팔 약을 구해야 했어요. 제조업체에 문의했더니 MOQ(최소주문수량)을 문제 삼으며 도매상을 연결해주더군요. 여기에 지인 찬스까지 동원해 공급처를 확보했습니다. 심장사상충을 비롯해 10종 정도의 약을 확보했습니다.”
온라인에 약국 전용 폐쇄몰을 만들었다. “동물 약도 사람 약처럼 온라인 판매와 거래가 금지돼 있어요. 도매상과 약국 간 거래만 가능하죠. 펫팜 쇼핑몰 가입 절차에 약국개설증과 동물약국허가증, 약사 면허를 확인하는 단계를 넣었습니다. 회사 설립부터 판매 준비까지 꼬박 4개월이 걸렸네요.”
2020년 4월 본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집 근처부터 시작해 수도권 약국을 무작정 찾아가 동물 약도 팔아보시라고 설득했어요.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하던 시기여서 약국은 늘 북새통이었습니다. 환자가 많으니 기다리라고 해서 2시간씩 밖에서 기다리기도 했죠. 대화의 기회를 엿보다가 겨우 동물 약 얘기를 꺼냈다가 퇴짜맞기 십상이었어요. 10곳을 가면 10곳 다 쫓겨날 정도였습니다.”
삼고초려가 안 되면 십고초려도 불사했다. 그렇게 하나 둘 동물 약국을 늘려갔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었지만, 코로나 덕분에 약사분들의 인식이 바뀌기도 했어요. 당시 문을 닫는 병원, 약국이 늘면서 약사들 사이에서 새로운 소득원에 대한 관심이 생겼거든요. 동물 약을 취급하고 싶어도 절차를 몰랐던 분들도 많았어요. 오프라인 매장이 있다면 ‘정부24’를 통해 지자체에 동물약국 개설 신고만 하면 됩니다. 동물 의약품을 영업하면서 동시에 그 절차를 안내하는 역할도 자처했습니다. 기존 동물약 도매인들과 차별화된 부분이었죠.”
또 다른 진입장벽은 약사에게도 동물 약이 낯설다는 점이었다. “우리도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웠어도 오랜만에 들으면 가물가물하잖아요. 약사에게 동물약도 꼭 그렇거든요. 동물 의약품의 용법과 성분, 효능을 정리한 카탈로그를 만들었습니다. 핵심 요약 노트를 보면 금세 기억이 되살아나죠. 약사가 손님을 응대하기도 훨씬 수월하고요.”
◇늘어나는 동물 약국, 그 다음은
동물 의약품을 취급하는 약국은 몇년 새 빠르게 늘었다. 2020년 이전엔 매년 300~400개씩 늘었다면 그 이후에는 1500~1600개씩 늘고 있다. 2025년 현재 약 1만2400개 약국에서 동물 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다. “펫팜 회원 약국도 크게 늘었어요. 작년 한해에만 2100여개 약국이 신규 회원으로 등록해, 현재 회원 약국은 총 약 5700여 개입니다. 전체 동물 약국 중 절반에 달하는 숫자죠.”
펫팜은 2024년 12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스타트업 투자 및 육성 프로그램 ‘디캠프 배치’ 1기에 선정됐다. “약국 수를 늘리느라 그간 마케팅에 소홀했어요. B2B 사업이다 보니 일반 소비자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죠. 이번 디캠프 배치 프로그램의 멘토링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광고비를 책정하는 방법부터 데이터 수집, 사전 테스트 등 다양한 전략을 배우는 중이에요.”
최근엔 제조사와 손잡고 직접 동물 의약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동물 약국에 가도 동물 의약품의 종류가 많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요. 우리나라 동물 의약품 시장은 경제동물 즉, 가축용 의약품이 8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선 이미 반려동물 의약품이 역전한 지 오래죠. 반려동물 의약품을 다양화하려면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겠더군요. 동물 의약품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모든 방법에 도전해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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