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모터 기술 스타트업 ‘이플로우(EFLOW)’의 윤수한(62) 대표는 요즘 국내외 기업이 연달아 울리는 ‘러브콜’에 마음 또한 쉴 틈 없이 설렌다. 저녁에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가, 다음 날 밤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오는 무박 2일도 불사한다. 얼마 전 9박10일로 유럽 출장을 다녀오고선 짐을 전부 안 풀었다. 어차피 2주 후 또다시 해외출장길에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는 현대자동차, LG, 삼성 등 국내 대기업과 미팅이 줄줄이 잡혀있다.

소형 모터 기술 스타트업 ‘이플로우(EFLOW)’의 윤수한 대표. /더비비드

이플로우는 원래 기존 모터보다 작지만 힘이 강한 ‘축방향 자속형(AFPM) 모터’와 이를 수소연료전지와 결합한 파워트레인(모터·기어 등 동력장치 시스템)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다. 그런데 올해 들어 로봇 회사에서 이플로우에 관심을 보이면서 미팅 횟수가 배로 늘었다. 아직 로봇 시장에 정식 진출한 건 아니지만, 6개월 내 시제품을 만들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 1년 내 양산용 제품을 정식 납품할 예정이다.

윤 대표는 ‘자신 있다’는 반응이다. 그는 “2015년 12월 창업 후 ‘힘 좋은 작은 모터’의 여러 버전을 만들었다”며” “로봇 회사가 필요로 하는 모터가 우리가 만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50대에 창업한 윤 대표는 어느덧 환갑을 지나 60대가 됐다. 그의 모험은 이제 본격 시작이다. 올해 매출액 60억원을 바라보고 있는 이플로우의 윤 대표와 통화로 이야기 나눴다.

◇미래 도심은 소형 이동수단의 세상

윤수한 대표가 상상하는 미래 도심 모습. 자동차는 없고 자전거, 소형 이동수단만 보인다. /이플로우

3월 말부터 열흘간 다녀온 출장은 프랑스, 독일 등의 카고 바이크(화물용 자전거) 회사에 이플로우의 모터를 정식 납품하는 계약을 위해서다. 유럽에서 그리는 가까운 미래는 이렇다. 시내에 자동차는 없다. 대신 자전거로 집에서 15분 이내 필요한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물건 배송이나 음식 배달도 2인승 경형 수소전기차나 카고 바이크가 담당하죠. 자동차 조작부와 같은 대시보드는 없고 스마트폰을 장착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겁니다.”

친환경 자동차를 넘어 이동수단의 개념이 소형 수단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이다. “유럽의 카고 바이크 시장은 한해 8% 이상 성장하고 있어요. 파리는 이미 ‘15분 도시’ 계획을 발표해 진행 중이고요. 독일에선 앞으로 시내주차장을 없앤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동차를 시내에서 운행할 수 없으니 곳곳을 누비는 소형 이동수단이 발달하죠.”

그러나 소형 운송수단이 친환경적일지 몰라도, 아직 일상생활에 자리 잡기에는 1%가 모자란 상황이다. 짐을 적재해 도로를 달리는 화물용 자전거는 출력이 250W로 제한된다. 안전을 이유로 너무 빨리 달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경사로에서는 출력이 반절 넘게 줄어든다. “출력은 낮은데 300~400km 운전을 하려니 카고 바이크가 힘이 달려요. 충전시간은 긴데, 얼마 못 가고요. 지금 전기 자전거만 봐도 알 수 있죠.”

이플로우가 개발한 AFPM 모터(왼쪽)와 일반 모터 크기를 비교한 그림. /이플로우

이플로우는 전기로 움직이는 소형 이동수단의 단점을 모두 해결한 모터를 개발했다. AFPM과 수소연료전지를 결합한 중소형 모터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해 화물용 자전거에 적용했다. 기존 리튬 배터리보다 작고 가벼운데 충전시간은 짧고, 멀리 보낸다. “기존 카고 바이크 모터보다 크기는 3분의 1, 무게는 60% 적습니다. 토크 출력은 2배 이상이고요. 기존 주행거리가 40km였는데 저희 모터로는 150km를 갑니다. 충전 시간은 3시간에서 2분으로 비약적으로 줄었고요. 운행 시간도 8시간 늘었습니다. 수소 42g이면 됩니다. 카고 바이크 전체 가격을 30% 넘게 절감하죠.”

이플로우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25개 화물용 자전거 회사에 모터 또는 파워트레인을 공급하고 있다. 아마존에 납품하는 스페인의 스쿠빅(SCOOBIC), 독일 이바이크 전문회사 아쿠라드(Akkurad)가 대표적이다. 에어버스(AIRBUS), 인피니언(Infineon) 등과도 전략적 협업 중이다. “지금 모빌리티 시장에선 중국 회사가 강력한 경쟁자인데요. 저희 제품이 중국 제품보다 성능은 더 좋은데 가격경쟁력에서도 뒤지지 않습니다.”

◇국내외 대기업, 로봇 회사에서 ‘러브콜’

2024년 11월 디캠프와 현대자동차가 주최한 디데이에서 발표 중인 윤수한 대표. /디캠프

올해부턴 윤 대표가 이전에 생각지도 못한 영역에서 사업 진출을 계획 중이다. ‘로봇’ 시장이다. 이플로우가 작고 힘 좋은 모터를 만든다는 소문이 나 국내외 대기업 로봇팀과 로봇 회사가 이플로우에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로봇이 AI(인공지능)와 결합하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모터’를 보자면 아직 요원하다. 모터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로봇 회사는 저마다 로봇의 자연스러운 움직임만 강조할 뿐 로봇이 얼마나 무겁고, 금방 배터리가 닳는지는 얘기하지 않는다.

“사람과 같은 모양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열심히 뛰고, 공중제비를 돌다가도 15분 정도 지나면 멈춰버려요. 로봇을 계속 움직이게 하려면 로봇이 배터리를 링거 맞듯이 달고 다녀야 해요. 무게는 어찌나 무거운지 200~300kg인데요. 모터가 경량화되지 않아서예요. 자칫 로봇이 넘어져서 사람이 깔리기라도 해보세요. 이걸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로봇 경량화를 위해선 작고 힘 좋은 모터가 필수다. 이플로우가 잘하는 일이다. “자세한 내용은 NDA(비밀유지계약)라서 공개가 어렵습니다만, 지금 휴머노이드 로봇이 쓰는 모터보다 크기는 3분의 1로 줄이고, 힘은 3배 정도 키울 겁니다. 통상 모터 하나 개발하는 데 2~3년 걸리는데요. 저희는 6개월 내 시제품을, 1년 내 양산용 제품을 만들 생각입니다. 로봇 뿐만 아니라 산업용 드론에 적용하기에도 어렵진 않습니다.”

◇1조원 기업 목표, 실현가능성 갈수록 올라가

AFPM을 개발한 독일 스타트업 쉴러의 기술자와 윤수한 대표(오른쪽). /윤수한 대표 제공

윤 대표는 1989년 유한양행을 시작으로 KIST, 정제 기술회사 폴(Pall) 등에서 일했다. 30대에는 홍콩 글로벌 전자기업에서 신사업을 발굴하는 기술마케팅 이사를 지냈다. 2012년 독일의 한 기술 박람회에서 AFPM을 개발한 독일 스타트업 쉴러를 발견하곤 3년 후 이플로우를 세웠다. 쉴러가 특허 낸 기술 중 소형 이동수단에 쓰이는 AFPM 전용실시권을 윤 대표가 손에 넣은 덕분이다. 윤 대표가 직접 2년 간 일주일에 1~2번씩 독일 쉴러의 기술자에게 특급 과외를 받은 끝에 2017년부터 소형 이동수단용 AFPM 시제품 공급에 성공했다. 이플로우는 한발 나아가 AFPM과 수소연료전지를 결합한 파워트레인을 개발해 이 시장을 선점하기 시작했다.

최근 프랑스, 독일 등에선 환경규제를 반대하는 세력이 집권하면서 친환경 정책이 후퇴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본래 유럽은 2035년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를 계획했으나, 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유럽을 수십번 오가며 현장을 지켜본 윤 대표가 경험한 실상은 다르다. 유럽의 친환경 사업 추진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윤수한 대표(왼쪽)와 이플로우 임직원들. /윤수한 대표 제공

“유럽의 날씨 변화가 말도 못 하게 극심합니다. 3월 말 출장 갔을 때 도착하는 날 영하였는데 한국 오는날 20도까지 올라갔어요. 예측 불확실성이 너무 커졌어요. 프랑스에선 카고 바이크 한 대를 살 때 2000~3000유로를 현금으로 지원하는데, 이런 정책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유럽에선 ‘이제 대비를 안 하면 정말 죽겠구나’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윤 대표는 유럽 카고 바이크 시장의 20~25%를 점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제는 30%까지 욕심내고 있다. 목표를 실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까지 이플로우는 40억원을 투자받았고, 올해 상반기 내 투자금액은 70억원이 될 전망이다. “로봇 사업까지 본격적으로 확대하면 목표치가 올라갈 겁니다. 현재 이플로우 기업가치가 200억원정도인데요. 2040년 정도엔 1조원 기업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