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이 슨 자전거에서는 삐걱대는 소리가 난다. 자동차 엔진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나면 점검을 해야 한다. 이처럼 이상 소음은 어딘가 잘못됐다는 ‘신호’다.
산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전기 누전, 가스 유출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소리가 난다. 문제는 주변 소음이나 청력의 한계로 그 모든 소음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제때 포착하지 못한 문제는 안전 사고나 불량품 증가 등의 위험 요소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스타트업 로아스(LOAS)의 이재현(38) 대표는 소리로 산업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갖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음향 탐지, 추적 및 검사 솔루션을 개발한 계기다. 현장 고충을 파고든 덕분에 로아스의 솔루션은 유명 대기업과 공기업에 빠르게 진출했다. 그를 만나 산업 현장에서 소리가 하는 역할에 대해서 들었다.
◇현장의 단서는 소리에 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광학으로 석사 과정까지 밟았다. 2016년 대학원 졸업 후 광학 기반의 체외진단 검사기 제조사에 입사했다. 외국 회사에 입사한 덕에 독일에서 플랜트에 계측, 검사 시스템을 적용하는 필드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이곳에서 공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 진단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이나 진동은 생산성이나 근로 환경과 연결됩니다. 이상 소음이나 진동은 장비 고장이나 위험 감지 신호로 기능하죠. 사람이 듣기 힘든 수준의 소음은 존재만으로도 불편을 초래하고요. 관건은 포착 가능성입니다. 진동의 경우 장비에 부착하는 진동계나 센서가 상용화됐는데요. 소음 진단 기술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소음을 없애려면 소음의 근원부터 알아내야 한다. “어떤 제품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환경 소음을 차단한 무향실에서 소음을 진단하는데요. 생산 현장에서는 이 방식을 적용할 수 없으니 한계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귀로 이상 소음을 판정하는 경우도 많아요. 마이크로폰센서 같은 기기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현장이 워낙 시끄럽다 보니 이게 설비나 제품에서 난 소리인지 환경 소음인지 분류하고 식별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소음의 근원과 종류를 현장에서 정확하게 감지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파급력 있겠다 싶었다. “음향은 문제가 발생한 위치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물리적인 수단입니다. 진동 감지 센서는 이상이 있다는 건 알려주지만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는 알려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배관에서 가스 노출이 발생하거나 전기 누설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어쿠스틱(acoustic) 데이터가 원인 파악에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사람이 듣지 못하는 비가청 영역까지 아우르면, 더욱 세밀하게 주변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감지할 수 있겠죠.”
◇소음의 종류와 발생 위치 특정하는 AI 개발
2020년 4월, 로아스를 설립하고 AI 기반 음향 탐지, 추적 시스템 개발에 들어갔다. 마이크로폰센서로 수집한 어쿠스틱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이나 설비의 이상 유무를 판정하고, 문제가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정확한 위치까지 식별하는 솔루션이다. 분석한 결괏값은 시각 정보로 보여준다.
이 모든 작업의 근간은 음향 검사 알고리즘 ‘AI 스퀘어’다. “음향 분석의 첫 단계는 식별입니다. 사방에 퍼지는 음향의 특성 때문에 소리가 벽이나 유리에 반사되어 온 건지, 바로 귀에 도달한 건지 정확히 분류하는 게 중요한데요. AI 스퀘어는 3차원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음향 데이터를 정확히 분류하고 식별합니다. 100밀리세크(100ms로 0.1초. 소리의 변화나 단위를 측정하는 시간 단위) 단위로 소리를 식별해, 이해하기 쉽게 수치로 변환하죠.”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똑똑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AI를 훈련하는 게 관건이었다. “처음엔 정상 데이터를 정확하게 정의합니다. 이후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이상 소음의 경우의 수를 학습시켜요. 이상 소음 관련 데이터가 많지 않아서, AI가 이상 소음 데이터를 스스로 배양해서 학습하는 식으로 고도화까지 했습니다.”
공산품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상 소음의 출처는 모터, 팬, 베어링 등에 불과해 AI를 학습시키는 과정이 크게 까다롭진 않았다. 반면, 산업 설비 분야는 도전적인 과제였다. “플랜트 같은 산업 설비에는 적으면 수 십 개, 많으면 수백개의 부품이 들어갑니다. 학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요. 이를 위해서 더 고도화된 후속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습니다. 일정 시간을 두고 데이터를 수집하면, 데이터가 설비에 이상이 발생할 확률을 계산해줍니다. ‘3일 이내에 모터가 고장 날 수도 있다’고 알려주는 식이죠.”
◇한국서부발전에 투입된 로봇의 정체
2022년 10월 AI스퀘어를 탑재한 시각화 기반 음향 검사 시스템 ‘스마트’(smart)를 개발했다. 이후 3개월간 가전 제조 대기업과 시장검증(PoC)을 진행하고, 생산 라인에 정식 도입했다. 2024년 하반기부터는 해당 기업의 해외 사업장에도 스마트를 설치했다.
스마트는 현재 로아스의 핵심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가전 생산 공정의 품질검사 단계에서 스마트가 도입됩니다. 제품을 동작했을 때 발생하는 이상 소음, 불규칙한 노이즈, 누설 등을 탐지해서 클라이언트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죠. 이 기업과는 시장검증 단계부터 함께 했는데요. 검증을 잘 마치고 해외 사업장에도 도입했습니다. 과거에는 청음 검사를 하다가, 이제 사람 없이 검사를 할 수 있게 되니 적용 범위를 빠르게 확대할 수 있었죠. 스마트는 이 기업의 음향검사 체계를 정립한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스마트에 만족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진보된 기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스마트를 드론에 적용한 티포스(Tfos)와 로봇에 적용한 티포이(Tfoi)를 개발한 계기다. “티포스는 국내 1위 기업과 함께 개발했습니다. 사업장 옥상의 배관이나 시설에서 발생하는 이상 소음, 화학 기체 누설 등을 탐지하죠. 티포이는 대형 설비 주변을 움직이면서 음향을 수집하고, 이상 징후를 예지해서 대비책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는 로봇입니다. 한국서부발전과 PoC를 끝내고 올해 도입을 시작했습니다.”
티포이, 티포스 같은 무인 플랫폼은 재해 발생 가능성을 없애고, 관련 비용을 저감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등의 요인으로 기업은 위험 지역에 인력을 투입하는 일을 줄이려는 추세입니다. 현장 문제를 사람이 판단할 경우 인적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더 큰 어려움은 관련 인력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설비 진단 관련 작업의 무인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어요. 매년 설비 진단, 관리 인력에 수십억을 투자하는 기업이 티포이나 티포스를 도입하면 단 몇 억원으로 같은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생각만 해왔던 것을 현실에 옮긴 결과
열심히 달려온 결과는 달콤한 결실로 돌아왔다. 2024년 약 15억8000억원의 매출이 발생했다. 올해는 1분기에만 1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목표치는 50억원이다.
현장 고충을 예리하게 파악해서 제품화에 성공한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2024년 10월 신용보증기금,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데 이어 지난 4월 IBK벤처투자, 퓨처플레이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를 받았다. 한국서부발전과 함께 ‘윈윈아너스’(WIN-WIN HONORS)에도 선정됐다. 윈윈아너스는 중소벤처기업부가 기업·공공기관 등이 중소기업과 동반성장 활동을 벌였는지 평가해 시상 및 지원하는 사업이다.
여기까지 오는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기술 개발에 매진한 첫 2년 6개월은 자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작년만해도 고비였어요. 전시회 참가를 앞두고 ‘우리 회사의 마지막이겠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모든 팀원이 밤낮으로 일해서 전시회 준비를 했죠. 한 마음으로 노력한 덕에 투자를 받고, 제품을 고도화하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여정을 돌아보면, 운이 좋았습니다. 다만 빠르게 결정하고, 실천에 옮긴 것도 한 몫 한 것 같아요. 누군가는 산업 현장에서 상상만 했던 일을 현실에서 보여줬으니까요.”
로아스의 진짜 무대는 해외다. 한국서부발전의 해외 플랜트에 유지보수 솔루션을 도입하기 위해 각 발전소에 부합한 로봇을 개발 중이다. 대기업 클라이언트 2곳 역시 솔루션을 해외 사업장에 도입할 구상이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국내 레퍼런스를 쌓는 중입니다. 운이 좋게 좋은 레퍼런스를 확보해 이를 발판으로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제조업이 발달한 중국 시장과 중동, 동남아 시장이 저희의 타깃입니다. 음향 진단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