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는 한 몸이다. 미국 파슨스 대학의 김민지(26) 교수는 그 그림자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LED 전등에 씌워진 커버에 특수 문양을 새기는 방식으로 무영등을 개발했다. 김 교수를 만나 뜻밖에 무영등을 개발한 이유를 들었다.
김민지 교수는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18학번이다. “모든 학생들이 VR, AR, 스마트폰 디자인에만 몰두했어요. 오직 삼성전자를 위한 디자인만 배우는 느낌이었죠. 저는 당장 쓸모가 없더라도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 대한 갈증이 커졌죠.”
2022년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 산업디자인과에서 석사를 받았다. “브라운대 컴퓨터공학과 이안 곤셔(Ian Gonsher) 교수의 프로젝트에 디자이너로 참여했습니다. ‘확장 현실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딥 서피스 액정 디스플레이’란 제목의 논문을 AHFE 국제 콘퍼런스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2024년 뉴욕 유명 미술대학인 파슨스 대학과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에 교수로 초빙됐다. “교습 과정을 개발하는 게 재밌습니다. 재료비가 많이 드는 과제는 디지털 방식으로 대체하고, 학생들이 학습 자료를 온라인으로 찾아볼 수 있도록 별도의 페이지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조명은 그가 관심을 놓지 않는 분야였다. 시행착오 끝에 조명 커버에 특수 문양을 새기는 방식으로 그림자를 지우는 기술을 개발했다. 디자인 능력을 활용해 무영등을 개발한 것이다. 한국, 미국, 중국에 특허 등록도 했다. “LED 칩을 가장자리에 배열하고, 아크릴 커버에 고해상도의 레이저 렌티큘라(입체감 있는 변환 렌즈)로 광로드를 새기는 방식입니다. 스크래치 모양의 간격, 깊이, 굵기, 각도와 아크릴판의 투명도, 두께 등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과정을 수없이 거쳤습니다.”
수술실이나 전시장 같은 곳에서 활용되는 기존 무영등은 비싸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기존 무영등은 8~9개의 전구의 빛이 서로 반사되도록 해 그림자를 사라지게 하는 원리인데요. 부품도 많고 전력 소모도 크죠. 반면 광로드를 활용한 제 무영등은 훨씬 효율적이고 저렴합니다.”
김 교수의 무영등은 2024년 경북대 고시원에 200여 개가 설치됐고, 서울 강남구의 진선여중·고에도 1400개가 설치됐다. 김 교수는 무영등의 대세를 확신한다. “커버에 무늬를 새겨 그림자를 사라지게 했다고 얘기하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더군요. 전 ‘왜 먼저 하지 않았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머지않아 그림자 없는 전등이 당연해질 것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