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의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대표적으로 각광받는 작물 중 하나가 ‘가지’다. 가지는 영양성분이 풍부하면서 사시사철 수급이 가능한 작물이다. 주산지인 여주에서 가지 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 손범식(29) 씨를 만났다.

손 씨가 갓 수확한 가지를 한팔 가득 안아들고 있다. /이영지 더비비드 기자

◇가지의 고장 ‘여주’

2024년 가락시장 거래 동향을 보면 전국 가지 출하량 가운데 여주가 차지하는 비율은 51%에 이른다. 생산량은 2023년 기준 8320t이다. 여주는 물이 풍부하면서도 물 빠짐이 좋은 사질양토로 가지 재배에 유리한 환경이다.

가지는 연중 생산이 가능한데, 그중 일조량이 풍부한 4월부터 8월까지 가장 맛있는 가지가 나온다. 이즈음이면 가지 출하를 담당하는 여주가남농협 공선회(공동선별출하회)는 눈코 뜰 새가 없다. 매일 오전 농부들이 수확한 가지를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가면, 선별사들이 특·상·중으로 분류한다. 22~25㎝ 정도의 길이에 짙은 보라색과 광택을 띠고 있으면 ‘특’이다. 공선회에서는 하루 최대 1200상자(약 9.6t)까지 선별·출고가 가능하다. 가남농협 장민석 계장은 “2024년 기준 가남농협 APC 매출 215억원 중 가지 매출이 60억원으로 약 28%를 차지한다”며 “매년 4월 이후부터는 전 직원이 가지 선별·유통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최사륜 더비비드 디자이너

◇요즘 대세 품종은 오토킹

손범식 씨는 여주가남농협으로 가지를 보내는 농부 중 한 명이다. 여주농고와 한국농수산대학을 나온 정통파 청년 농부다. 2015~2017년 미국 뉴햄프셔주의 PVG(Pleasant View Gardens)사에서 인턴 생활도 했다. 꽃과 잔디를 키워 출하하는 일을 맡았다.

미국에서 연 매출 500억원 규모의 기업농 시스템을 경험하고 농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한국에 돌아와 선택한 작물이 가지다. 그는 “매일 수확할 수 있어야 하고, 특정 지역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2가지 기준으로 ‘여주 가지’를 골랐다”고 했다. 그렇게 2020년 4000㎡(1200평) 부지에 비닐하우스 4동을 짓고 가지 농사를 시작했다.

요즘 여주 가지의 대세 품종은 ‘오토킹’이다. 기존 주력 품종인 ‘축양’을 개량한 것으로, 현재 오토킹의 점유율은 80%를 넘는다. 축양 등 기존 품종은 꿀벌이나 착화제를 통해 꽃 하나하나 수정시켜야 했다. 반면 오토킹은 자가수정을 통해 알아서 열매를 맺어 생산성이 매우 높다. 손 씨는 “오토킹은 매년 8월 20일께 모종을 심어, 9월 말부터 동절기를 제외하고 매일 딸 수 있다”고 했다. 동절기는 이틀에 한 번 수확할 수 있다.

◇양액 재배로 품질 좋은 가지 재배

손 씨는 젊은 농부답게 신농법을 택했다. 그의 가지들은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양액 재배 방식으로 배지를 공중에 띄워놓고 기른다. 배지는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흙을 대신하는 재료를 말한다. 영양분이나 물은 호스를 통해 공급한다.

양액 재배는 청결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어 각종 병충해 예방에 용이하고 저농약 재배가 가능하다. 과실이 크는 속도가 빨라서 씨가 덜 생기고 가지의 식감이 더욱 부드러워진다는 장점도 있다.

양액재배는 당연히 물이 중요하다. 손 씨는 “가지 농사의 반은 물”이라며 “양액재배의 경우 물에 어떤 비율로 비료를 섞어줄지 노하우가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온도는 25~30℃가 이상적인데, 4월부터는 햇빛이 강해지면서 30℃를 훌쩍 넘는 날이 많다. 이럴 때는 물을 더 줘야 한다. 손 씨는 “가지 줄기나 잎에 물이 부족하면 열매에 있는 물을 빼서 생존하려고 한다”며 “열매가 말라 상품성이 없어질 수 있어서, 물을 충분히 줘야 한다”고 했다.

출하를 앞둔 여주 가지. /이영지 더비비드 기자

◇가지로 실현해 나가는 젊은 부농의 꿈

손 씨는 농사에 노하우가 붙으면서 한해 8㎏들이를 기준으로 한 해 1만5000 상자 내외의 가지를 생산하고 있다.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4배로 늘었다. 그는 “농사를 짓기 전에는 가지가 어떻게 자라는지 본 적도 없어서, 새순을 치는 시기를 놓쳐 제대로 된 열매가 맺히지 않거나 관수 기계의 압력을 잘못 맞춰 물을 너무 적게 주는 등 시행착오가 있었다”며 “공부도 하면서 선배 농부들의 조언과 경험으로 하나하나 배워나가고 있다”고 했다.

손 씨는 젊은 부농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작년 매출 1억원을 넘어섰다. 하루 평균 50상자(약 400㎏), 많을 때는 80~100상자(약 800㎏)까지 작업한 결과다. 최근 생산량이 더 늘면서 직원도 한 명 고용했다. 올해 매출은 2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재배 면적을 더 늘려 단기간에 직원을 3~4명 정도 더 둘만큼 확장할 계획”이라며 “기후변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한국의 식량 안보에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가지 주산지인 여주 농가를 방문해 가지 생육·출하 동향을 점검하는 모습. /농협경제지주 제공

◇농협, 가지 생육 관리에 만전

가지는 가정, 식당뿐 아니라 학교 급식소나 기업 구내식당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우리 밥상을 책임지는 만큼, 생육·수급 관리가 필요한 작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저온피해나 일조량 감소 등 이상기후에도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이에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지난해 여주시 가지 농가를 찾아 가지의 생육 및 출하 동향을 점검하고 생산 현장을 격려하기도 했다. 실제 농협은 가지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영양제를 최대 50% 할인 공급하는 등 농산물 생육 관리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강 회장은 “가지 농가 등의 산지 작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약제를 적기에 공급하는 등, 농산물이 안정적으로 유통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