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부터 은행 실명 계좌를 개설하지 못하는 가상 화폐 거래소를 퇴출시키겠다는 금융위원회가 정작 거래소 현황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차 가상 화폐 광풍이 분 2018년 이후 3년이 흘렀지만, 정부가 아무런 대책도 세워 놓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의 무책임 때문에 온 나라가 투기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부터 가상 화폐 거래소 신고·등록을 받고 있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거래소가 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FIU 관계자는 22일 “최소 100곳에서 최다 200곳으로 추정한다”고만 했다. 이 숫자도 민간 가상 화폐 거래소 분석 업체들 자료를 인용한 것으로, 정확한 숫자는 9월 24일 거래소 신고·등록 절차가 끝나야 나온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만 하면 아무나 가상 화폐 거래소를 차릴 수 있었다”며 “금융위에서 별도 등록·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현황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하루에만 가상 화폐 투자용 은행 계좌가 7만개씩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정부가 투자자 보호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2일 국회에서 가상 화폐를 미술품과 비교하며 모든 거래에 대해 일일이 보호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상 화폐가 제도권에서 규제받는 금융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자 보호까지 해줄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한 가상 화폐 전문가는 “앞으로 많은 금융 상품이 가상 화폐로 거래될 텐데 단순 미술품과 비유하는 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술품 시장 규모가 수조원이라면 소비자 보호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우리나라 미술품 시장은 4000억원대(2019년 거래 총규모)인데 가상 화폐는 최근 일평균 30조원씩 거래된다.

금융위뿐 아니라 다른 정부 부처들도 아무런 대책 없이 수수방관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3년 전 가상 화폐 투자 과열로 거래소 서버가 다운될 정도였고, 북한이 국내 가상 화폐 거래소를 10차례 해킹해 864억원 피해가 났다는 유엔(UN) 보고서까지 나왔다. 그런데 정부는 가상 화폐 주무 부처를 금융위원회에서 법무부(2017년)와 국무조정실(2018년)로 차례로 바꾸며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보다 훨씬 싼 해외 거래소에서 가상 화폐를 사서 한국에서 팔아 차익을 남긴 후 이를 본국으로 보내는 ‘김치 프리미엄 차익(差益) 거래’ 자금 세탁 의혹이 커져도 제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