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구리 선물(先物) 상장지수증권(ETN) 15종이 한꺼번에 코스피에 상장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2018년 11월 이후 3년 만에 출시된 구리 관련 ETN이란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올 들어 구리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지난 5월 10일 사상 최고치(톤당 1만724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톤당 98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연초 이후 24%, 코로나 발생 직후 최저였던 작년 3월 23일(톤당 4617달러)과 비교하면 112% 올랐다.

ETN은 증시에 상장돼 거래되는 증권(채권)으로 상장지수펀드(ETF)가 모양만 채권으로 바꾼 것이다. ETN은 사전에 약정된 기초지수 등락률에 따라 상품 수익률이 연동된다. 만기가 정해져 있고, 만기 이전까지 자유롭게 증시에서 사고팔 수 있다. 만기 시점에는 약정 수익률을 받게 된다.

◇구리 가격 고공 행진

한국투자증권이 내놓은 ETN 3종은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상장된 구리 선물 일일 등락률에 1배, 2배, 마이너스 2배로 수익률이 연동돼 있다. NH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등 다른 증권사들도 비슷한 상품 구조다.

ETN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할 때에는 괴리율을 살펴야 한다. 괴리율은 ETN 1증권당 실질 가치와 증시에서 ETN이 거래되는 가격 간에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뜻한다. 괴리율이 플러스인 경우 ETN의 거래가치가 과대 평가됐다는 뜻이다. 지난해 4월 원유 선물 가격이 초유의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이를 기초 자산 삼아 만들어진 ETN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구리 선물 ETN의 괴리율이 커진다면 줄어든 뒤에 투자하는 것이 안전하다.

구리 가격 상승은 친환경 경제 전환에 필요한 원자재로 분류돼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용 음극재 원료가 구리인데 전기차 한 대당 필요한 구리 양이 기존 내연기관차 대비 4~10배 요구된다. 탄소 중립 정책 아래 글로벌 태양광 및 풍력 발전에 쓰일 구리 수요 비중은 2016년 3.4%에서 2025년 6.6%로 확대될 전망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구리 없는 탈(脫)탄소는 없다. 구리는 새로운 석유”라고 평가했다.

세계 1위 구리 생산국으로 전 세계 구리 공급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칠레의 생산 차질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칠레 정부가 구리 생산 기업에 대한 과세를 늘리면서 지난 9·10월 칠레의 구리 생산은 전년보다 각각 4.6%·6.9%씩 감소했다.

◇본격적인 경기 확장 신호로 보기는 어려워

구리는 산업 전반에서 핵심 소재로 사용되기 때문에 구리 가격 등락을 보면 경기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해서 ‘닥터 코퍼(Dr. Copper·구리 박사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구리 사용량이 늘어 가격이 오르면 경기가 확장 국면에 접어든다는 신호가 되고, 반대의 경우는 경기 위축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구리 가격 상승은 전반적인 경기 호황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산업이 커지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가격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전통적 제조업 사이클을 대표하는 중국 제조업 경기에 우려는 더 커지고 있어 최근 구리 가격 상승을 경기 호조·회복의 산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4.9%로 정부 목표치(6% 이상)와 잠재 성장률(5.5%)을 모두 밑돌았다. 왕쥔(王軍) 중위안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4분기에도 경기가 계속 하강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미국 3분기 성장률 역시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으로 시장 전망치(2.8%)에 미달하는 2%(전기 대비 연율 환산)에 그쳤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친환경 산업 성장마저 주춤하면 구리 가격 상승세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탈(脫)원전은 친환경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지만, 지난달에는 유럽연합(EU) 10국에서 “원자력 발전이 친환경 에너지”라며 지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변화의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