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자동 세양빌딩 1층 김앤장 본사간판 앞. /조선DB

금융 당국에서 핀테크와 IT(정보기술) 등 디지털 분야를 담당해온 중견 간부들이 잇따라 로펌에 영입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서 IT핀테크전략국장과 디지털금융검사국장을 지낸 전길수 국장은 이번 달에 김앤장 고문으로 옮긴 데 이어, 작년까지 금융위원회 전자금융과장을 맡았던 이한진 소비자정책과장도 조만간 김앤장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합니다.

디지털 금융 당국자들의 로펌행(行)은 금융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 때문입니다. 네이버·카카오 같은 테크 기업들이 속속 금융업에 진출하면서 디지털 금융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관련 법과 제도는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서 법적 분쟁이 늘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로펌들이 당국자 영입을 서두르는 것이죠.

작년 하반기부터 서비스가 시작된 마이데이터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직은 금융 분야 데이터 활용에 한정돼 있지만 공공·의료 부문까지 확장하면 사업이 무궁무진하게 확장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따라 개인 정보 활용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법적 분쟁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김앤장은 아예 ‘마이데이터팀’을 구성했고, 법무법인 광장 역시 ‘디지털 금융팀’을 신설해 대응 중입니다. 법무법인 태평양도 디지털 혁신그룹 내에 마이데이터 대응팀을 꾸렸습니다.

하지만 규제 당국자의 로펌행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김앤장이 금융 당국의 규제를 받는 카카오페이의 법률대리인이기 때문에 이해 상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카카오페이는 작년까지 보험 상품을 판매하거나 P2P(온라인 투자 연계 금융) 업체의 투자 상품을 소개해주고 수수료 수입을 올렸습니다. 이에 대해 금융위가 “금융소비자법상 금융상품 판매 대리·중개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업체(카카오페이)가 중개 행위를 하면 법률 위반”이라고 지적하자 카카오페이는 관련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는 디지털 금융 분야에서 당국의 규제 방향을 잘 아는 당국자 출신을 영입한 로펌은 그만큼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로펌으로 옮긴 금융 당국자들이 빅테크 기업들의 방패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빅블러 시대에 빅테크와 금융 당국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막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