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만 해도 ‘인플레이션 시대 최적의 대피처’라며 뭉칫돈이 몰렸던 상장 리츠(REITs·부동산 투자신탁)가 최근 급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금리 급등으로 기초 자산인 부동산의 가치 하락이 시작된 데다, 리츠를 꾸리는 데 필요한 자금 조달 비용이 두 배 불어나면서 배당수익률 하락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차입금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가 큰 리츠일수록 주가 하락률이 두드러진다. 자금 시장 경색이 쉽게 풀리지 않고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리츠 투자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 리츠, 부동산값 하락에 대출이자 상승 직격탄… “배당금 줄어드나” 시름 깊어진 투자자들
한국거래소가 국내 상장리츠 시가총액 상위 10종목을 모아 산출하는 ‘KRX 리츠TOP10′ 지수는 올 5월 23일 상장 이후 10일까지 5개월여 만에 31% 급락했다. 7조5000억원이 넘던 지수 시가총액은 2조3000억원 이상 날아갔다.
리츠는 투자자 자금과 대출 등을 모아 대형 부동산에 투자하고 임대료나 매각 차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주식회사다. SK그룹이 사옥을 빌리고 임차료를 SK리츠에 지급하면 이를 주주들이 배당으로 받는 식이다. 부동산 비율이 총자산의 70% 이상이어야 하고, 배당 가능한 이익의 90% 이상을 의무적으로 배당한다. 물가상승분만큼을 임대료에 전가할 수 있다면 인플레 위험을 헤지(회피)할 수 있다.
그러나 금리 상승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리츠 대출이자 상승 폭이 임대료 상승분을 크게 앞지르면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이 여파가 주가에 미치고 있는 것이다.
내년 1월 1180억원 규모의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 NH올원리츠의 경우, 2020년 1월 최초 대출 당시 연 3%에 자금을 조달했지만, 지금은 두 배 가까운 이자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롯데리츠는 총 차입금 1조1390억원 중 90%가 넘는 1조490억원을 내년 중 새로 조달해야 한다. 지난달 리파이낸싱(재융자)한 4780억원어치 차입금의 경우, 2800억원은 4.88% 금리에 1년 만기 은행 담보대출을 받았고 2000억원은 3개월에 6.2%짜리 전단채(전자단기사채)로 조달해야 했다. 내년 1월 중순 재차 만기가 돌아온다. NH올원리츠 주가는 올 들어 41%, 롯데리츠 주가는 36% 폭락했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대출 금리가 1% 상승한다면 담보인정비율(LTV) 60%를 가정한 상황에서 임대료를 평균 13% 올려야 이자 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며 “상장 리츠들이 임대료 인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옥석가리기 시작… 내년 만기 부담
리츠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자, 한국리츠협회는 10일 여의도에서 투자자 대상 간담회를 열고 상장리츠별 경영 상황을 설명했다. 임대료를 올려 고배당을 지급을 약속하는 등 투자자 우려를 가라앉히느라 분투했다.
작년 상장 리츠의 평균 납입자본금 대비 배당금 비율은 7.7%, 시가 기준 배당수익률은 5.2%였다. 시장에서는 자금 조달 금리가 1% 상승할 때 리츠주의 배당수익률은 0.8~1.5%포인트가량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웬만한 은행 예금 이자율이나 채권 수익률이 5~6%대까지 오른 상황에서 리츠의 상대적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기 침체로 수요가 둔화하면 임대료 상승이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각 상장리츠는 보유 자산을 매각하며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전국 166개 주유소를 보유한 코람코에너지리츠의 경우 18개 자산을 매각해 1000억원가량을 마련할 계획이고, NH프라임리츠는 잠실의 삼성SDS타워 매각을 진행 중이다. 신한알파리츠는 용산 더프라임타워 매각을 앞두고 있다.
국내 상장리츠들의 재융자 시점은 내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도래한다. 이 때문에 리츠주 사이 옥석 가리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배상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상장리츠 주가가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았다”며 “내년에는 LTV가 낮거나 부채 잔존 만기가 길고, 우량자산이 많거나 신용등급이 높아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조달이 가능한 리츠와 그렇지 않은 리츠 사이에 차별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