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33)씨는 최근 카드사에서 대출 연체 안내 문자를 받았다. 작년 말 카드사에서 연 15% 금리로 1000만원을 빌렸는데, 카페 매출이 줄면서 제때 갚지 못한 것이다. 김씨는 “카페 근처의 대형 사무실 몇 곳이 이전하거나 문을 닫으면서 손님들 발길이 크게 줄어든 상태”라며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금리·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서민 가계의 부채 관리에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급전(急錢)이 필요한 사람이나 중·저신용자가 많이 찾는 신용카드 대출과 인터넷은행 비상금 대출의 연체 규모가 최근 급증세다.

◇은행 카드 대출 연체, 10년 만에 최고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일반은행의 신용카드 대출금 연체율(카드사업을 분사한 은행 제외)은 지난 2월 말 3.4%를 기록했다. 2014년 11월(3.4%) 이후 1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하루 이상 원금을 연체한 경우를 집계했다. 일반 은행 카드 연체율은 작년 2월 말 2.5%에서 1년 만에 1%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은행들이 악성 연체 대출 일부를 털어내면서 3월엔 연체율(3.1%)이 소폭 하락했으나 3%대의 높은 연체율이 이어지는 만큼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2003~2004년 카드 사태 때처럼 연체율이 3%대 후반까지 치솟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저신용자에게 소액 신용대출을 많이 해주는 인터넷은행들도 최근 빚을 제때 못 갚는 고객이 늘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등 인터넷은행 3사의 지난 3월 말 ‘비상금 대출’ 연체액은 27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년 사이 94%(134억원)나 늘었다. 비상금 대출은 스마트폰을 통한 간편한 서류 심사로 최대 300만원까지 빌려주는 금융 상품이다. 빠르고 쉽게 빌릴 수 있는 대신 이자는 최고 연 15%로 높은 편이다. 인터넷은행들의 비상금 대출 연체율은 작년 3월 0.71%에서 올해 3월 0.94%로 0.23%포인트 올랐다.

그래픽=김성규

◇서민·저신용자 살림 팍팍해진 탓

신용카드 대출과 인터넷은행 비상금 대출 연체가 최근 크게 늘어나는 것은 이를 주로 이용하는 서민과 중·저신용자들의 살림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물가가 길어지는 데다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도 2년 넘게 지속되면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1분기(1~3월) 가계동향 조사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가구의 소득에서 필수 생계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38%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 생계비는 식음료와 월세, 공과금, 교통비 등 생계를 꾸리는 데 꼭 필요한 비용을 말한다. 필수 생계비를 빼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보니 서민들의 대표 급전 창구인 카드론 잔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국내 9개 신용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39조9644억원에 달한다. 카드론 잔액은 4개월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고신용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중은행은 2금융권보다 상황이 조금 낫다. 은행 가계대출 연체율은 작년부터 0.3~0.4%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출 규모가 워낙 커서 3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한 부실채권은 쏟아지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은 1분기 1조2111억원의 부실채권을 상각 또는 매각했다. 작년 1분기(7194억원)보다 68% 늘었다. 작년 4분기엔 1조7301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최근 2개 분기 연속 1조원 이상 부실채권을 털어낸 것은 이례적”이라며 “그만큼 연체율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는 뜻”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금융 지원보다는 경기 활성화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민환 인하대 교수는 “금융회사에 손을 벌려 몇 천억원씩 서민 금융 지원에 쓰는 것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안 된다”며 “정부는 내수를 살리기 위한 총력전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