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집값 급등을 불러온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가 한 달 만에 번복되면서, 은행들의 각종 대출 정책도 급변하고 있다. 대출금리를 낮추라는 금융 당국 압박에 연초 금리를 내리고 대출 규제를 풀었던 은행들은 다시 대출을 조이고 있다. 은행들은 재개했던 전세 대출을 한 달 만에 다시 중단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수도권 주택 보유자에게도 대출을 내줬던 은행도 한 달 만에 다시 대출 문을 걸어 잠갔다. 땜질식 규제에 은행마다 대출 가능 여부가 달라져 대출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제한→해제→제한’, 뒤집히는 대출 조건
우리은행은 작년 9월 가계 대출이 급증하자 서울·수도권에서 유주택자 대출을 제한했다. 그런데 다섯 달 후인 지난달 21일 이를 해제했다. 연 3.5%였던 한국은행 기준 금리가 0.5%포인트 떨어지면서 금융 당국이 ‘대출금리를 내려야 할 때가 됐다’고 하자 유주택자 대출 빗장도 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은행은 오는 28일부터는 또다시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에 집을 사려는 유주택자에게는 대출해 주지 않기로 정했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9월 조건부 전세 자금 대출(소유권이 바뀌는 주택에 대한 전세 대출)을 중단했다가 올해 1월 2일 재개했다. 그런데 이달 21일 이번엔 서울 전 지역의 조건부 전세 자금 대출을 막았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정부 정책으로 서울 강남권 갭 투자만 막혔지만, 다른 지역으로 풍선 효과가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9월 유주택자에게 주택 구입 자금 대출을 내주지 않기로 했다가, 지난달 14일부터 기존 주택을 2년 내 처분하는 조건을 전제로 1주택자에게도 주택 구입 자금 대출을 허용했다. 하지만 2년 내 처분 조건을 다시 없애 원래 규제로 복귀할지 검토하고 있다. 이 밖에 하나은행은 지금까지 주택 구입에 따른 대출을 막지 않다가 이달 27일부터는 서울에 주택을 가진 세대에는 주택 구입 자금 대출을 막기로 했다.
◇대출 만기, 생활 안정 자금 한도도 ‘고무줄’
대출 만기나 한도도 은행별로 규제 차이가 크다. KB국민은행은 서울·수도권 지역 주택 담보대출 만기를 최장 30년으로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29일 50년에서 30년으로 줄인 뒤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9월 3일 주택 담보대출 최장 기간을 30년으로 줄였다가 올해 2월 20일 비수도권에서만 40년으로 늘렸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9월 9일 주택 담보대출 최장 기간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했고, 올해 3월 10일 수도권 이외 지역만 다시 40년으로 늘렸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1월 1일부터 주택 담보대출 최장 기간을 4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한 바 있다.
생활 안정 자금을 목적으로 받는 주택 담보대출 한도도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한도를 없앴고, 하나은행은 1억원, 우리은행은 2억원을 한도로 두고 있다.
이렇게 은행마다 대출 조건이 제각각이 된 것은 금융 당국이 대출 정책 방향을 잡으면서 세부 지침을 주던 예전과 달리 세부 방안은 은행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출 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은행들도 당국의 눈치를 보며 땜질식으로 자체 방안을 세우다 보니 은행마다 대출 가능 조건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대출 조건을 찾으려면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은행들은 올 들어 대출 증가세가 정책 대출을 중심으로 늘었고, 실제 은행 자체적으로 대출 심사를 해서 나가는 대출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0일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정책 대출을 제외한 가계 대출은 KB국민은행을 제외하고는 모두 감소했다. 5대 은행 가계 대출 잔액도 이달 20일 635조1153억원으로, 작년 말(640조1319억원)보다 5조원 넘게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