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와 텐센트 등 중국 테크 기업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 현실화하자, 중국도 반격 카드를 뽑아 들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19일 '신뢰할 수 없는 실체(법인과 개인) 명단 규정’을 공개하고, 이를 즉각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에 위협이 되거나, 중국 기업에 차별적 대우를 해 피해를 발생시키는 외국 기업과 개인을 제재한다는 내용이다.
이 명단에 오른 기업은 중국 수출입, 중국 내 투자가 금지·제한되고, 직원들의 중국 입국 제한과 거주 허가가 취소된다. 중국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중국 기업이 미국 등에서 적대적인 상황에 부딪히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대응 조치를 할 법적 토대를 닦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 기업에 대한 중국판 ‘블랙리스트’다. 미국은 중국 화웨이에 이어 20일 메신저 ‘위챗’을 서비스하는 텐센트에 대한 제재도 시작했다. 이에 중국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중국 정부는 아직 구체적 기업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환구시보는 지난 5월 애플, 퀄컴, 시스코, 보잉 등이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현실화하면 이 기업들에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산업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이 ‘강대강’으로 맞붙으면서 글로벌 산업계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화웨이에 대한 제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중국은 20일 미국이 텐센트에 대한 제재에 돌입하자 미국 기업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들고 나왔다. 미·중의 갈등이 상대국 기업들에 대한 난타전으로 확대될 경우 IT(정보기술) 업계는 물론 세계 경제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기술 패권의 문제로 시작된 것이 이제는 국제 정치적, 지정학적 문제가 됐다”면서 “이 격랑에 한국 경제가 난파하지 않도록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챗 사용금지는 법원이 일단 제동
중국 텐센트에 대한 제재는 20일(현지시각) 미 상무부의 예고대로 추진됐다. 다만, 위챗 사용 중단에 대해서는 미국 법원이 일단 제동을 걸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의 로렐 빌러 판사는 19일(현지시각) 위챗 사용자들이 미 정부의 위챗에 대한 사용 금지 조치를 멈춰달라며 전날 낸 긴급 요청을 받아들였다. CNN은 “캘리포니아 법원의 긴급조치는 미국 전역에 적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위챗은 중국의 ‘국민 메신저’로, 노점에서도 쓸 수 있는 강력한 간편 결제 기능 덕분에 10억 중국인이 매일 사용한다. 이 때문에 중국과 연락해야 하는 미국인의 필수 앱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정부는 위챗이 수집한 사용자 정보가 중국 공산당에 넘겨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 내 중국 기업의 정보가 미국에 남도록 하는 것도 목적”이라고 했다.
반면 텐센트와 같이 20일 기점으로 퇴출당할 것으로 예상했던 틱톡은 사용 금지가 일주일 연장됐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오라클과 월마트가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와 협력하는 새 합의안을 승인하면서다.
◇중국 반격하면 미국 기업도 타격
텐센트 제재가 예정대로 이뤄지자 중국 상무부는 작년 5월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강화될 때 언급했던 ‘외국 기업과 개인에 대한 제재 규정’의 실체를 공개했다. 이른바 ‘신뢰할 수 없는 실체 명단 규정’, 즉 미국 기업에 대한 블랙리스트다.
중국의 다음 행보는 이 리스트에 오를 기업을 하나둘씩 밝히는 것이다. 벌써 애플과 퀄컴, 시스코, 보잉 등의 이름이 나온다. 애플은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스마트폰을 3100만대 팔았다. 통신 반도체 기업 퀄컴은 중국에 통신 장비와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연간 수억개씩 공급했다.
이는 즉각 국내 기업들의 손실로 연결된다. 애플의 경우, 삼성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이 각각 아이폰용 화면(디스플레이)과 카메라 부품을 판매하고 있다.
◇미·중 사이 기로에 선 한국
미·중 갈등은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은 화웨이와 위챗, 틱톡에 이어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대만을 ‘우군’으로 끌어들여 유리한 고지를 점해 가고 있다. 지난 18일 대만 차이잉원 총통 주재의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 환영 만찬 자리에 모리스 창 TSMC 창업자가 나타난 것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 세계 1위 기업으로, 화웨이 등 여러 중국 기업의 반도체를 만들어온 TSMC가 미국에 바짝 붙은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한국의 입지는 점점 더 악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 어디에 설지 선택을 강요받을 시점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중국 비즈니스와 공급 체인은 유지하더라도, 핵심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