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세계 IT 업계가 깜짝 놀랐다. 미국의 인텔이 화웨이와 제품을 거래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21일(현지시각) 인텔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인텔이 화웨이와의 거래 승인 허가를 받았다. 거래 허가받은 것은 일부 부품”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 15일부터 전 세계 모든 반도체의 화웨이 공급을 사실상 끊었다. 미국의 장비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통해 만든 반도체를 화웨이와 거래할 경우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2위이자 통신장비 시장 1위인 화웨이를 ‘고사’시키려는 작전이다.
인텔은 세계 반도체 시장 1위 기업이다. 컴퓨터용 CPU(중앙처리장치) 시장의 ‘맹주’이며, 서버용 CPU 시장의 점유율 95%를 차지한다. 인텔을 화웨이와 거래하도록 허가해주는 것은 화웨이 압박을 완화하는 측면으로 비춰질 수 있다. 미국은 인텔과 화웨이의 거래를 왜 허가했을까? 거래 허가를 한 것은 맞는 걸까?
◇인텔과 AMD는 정말 화웨이와 거래 허가를 받았나
로이터 보도가 나왔을 때 반도체 업계에서는 “오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등 유력 매체들이 해당 내용을 전혀 보도하지 않은 것도 의심을 샀다.
취재결과, 인텔이 미 정부로부터 화웨이와 제품 거래를 허가받은 것은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텔코리아 측은 “일부 품목에 대해 화웨이 공급에 대한 허가를 받은 게 맞다"며 “단 어떤 품목인지 상세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 이는 본사 공식 답변”이라고 밝혔다. 인텔과 함께 AMD도 화웨이와 거래 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거래 허가가 화웨이 제재가 강화된 9월 15일 이후 받은 허가가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작년 인텔과 퀄컴 등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를 위해 받았던 허가가 있는데, 이 허가를 갱신해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거래 허가한 품목은 무엇일까?
인텔과 AMD는 미국 허가를 받은 거래 품목이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인텔과 AMD가 거래 허가받은 품목은 서버용 CPU와 칩셋인 것으로 확인됐다.
화웨이는 지난 22일 기업용 서버 ‘퓨전서버 프로 V6’ 시리즈 신제품 ’2488H V6′를 발표했다. 이 서버에는 4개의 3세대 제온 스케일러블 인텔 프로세서가 탑재됐다. 쉽게 말해 화웨이가 만든 서버에 인텔의 서버용 CPU가 들어가는 것이다. 인텔은 이를 위해 작년 말 미국의 제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거래 허가증을 획득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MD도 작년말 미국 정부의 거래 중단 기업 고객과의 허가를 획득해 화웨이와의 거래를 지속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허가했을까?
미국이 인텔과 AMD에 화웨이와의 거래 허가를 승인한 이유는 뭘까. 미국 정부가 화웨이 제품 라인업을 면밀히 분석하고 안보에 위험이 적은 부분에서는 거래를 허가해준 것으로 분석된다. 핵심인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사업은 죽이면서, 곁다리 사업인 화웨이 서버와 노트북 사업은 현상유지를 보장하고 반도체 판매로 수익을 거두는 것이다.
화웨이 서버는 중국 내에서만 팔리고 있다. 중국 내수 기업들을 중심으로 활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화웨이 제재의 주요 근거로 드는 ‘안보 위험성’이 없다. 화웨이는 또 작년 한 해동안 전 세계에서 반도체를 208억달러(24조원) 어치 구매한 3위 고객이다. 인텔은 서버용 CPU 시장 점유율이 95%인데, 그 중 40%를 화웨이가 구입한다. 큰 손인 화웨이를 잃을 경우 타격이 크기 때문에 화웨이 제품의 영향력이 적은 부분에서는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허가해준 것으로 보인다.
또 CPU가 들어가는 제품은 현재 화웨이의 주력 상품이 아니다. 스마트폰에는 CPU가 아닌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들어간다. 화웨이가 만드는 노트북에 인텔과 AMD의 CPU가 필요하지만 화웨이의 노트북 시장 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화웨이 제재는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라며 “미국 기업과의 CPU 거래가 재개돼도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사업 타격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국내 업체는 허가 받을수 있을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화웨이와 거래 허가 승인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한 국내 업체들은 어떻게 될까. 현재로선 단기간에 화웨이와의 거래 승인을 받을 확률이 높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등이 화웨이에 공급하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용 중소형 OLED다. 이는 화웨이의 핵심 사업인 스마트폰 생산과 직결된다. 이를 허가해 줄 경우 화웨이에 대한 제재는 물거품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미국의 화웨이 제재 의지는 굳건한 상태”라며 “외교적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은 이상 쉽게 국내 기업에 화웨이 거래 허가를 줄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