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4G보다 속도는 20배, 연결할 수 있는 기기는 10배로 늘어나고 지연 속도는 10분의 1로 줄어든 넓고, 체증 없는 ‘통신 고속도로’가 바로 5G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8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5G 상용화 축하 행사’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 말은 그대로 이뤄지지 않을 공산이 커졌다. 우리나라 정보통신 정책의 수장인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7일 국정감사에서 28㎓(기가헤르츠) 주파수를 이용한 전 국민 대상 ‘초고속 5G(5세대)’ 서비스를 할 계획이 없음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3.5㎓ 주파수에서만 5G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28㎓ 주파수 대역의 5G 서비스는 현재 4G의 4~5배 수준인 5G 속도를 ‘4G의 최대 20배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다. 이 때문에 국내 통신 소비자들은 늦어도 연내에 전국 대상의 28㎓ 서비스 구축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해왔다. 하지만 5G 출범 1년 6개월 만에 정부가 이를 부인하고 나서면서, 통신 소비자들 사이에는 “정부 믿고 비싼 5G에 가입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격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4G의 20배' 속도는 28㎓ 서비스 필요
최 장관의 이날 발언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기정통부 국정감사에서 윤영찬(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윤 의원이 “28㎓ 주파수로 전국망 서비스가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하자, 최 장관은 “정부는 28㎓ 주파수의 5G 서비스를 전 국민에게 서비스한다는 생각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그는 이어 “(28㎓를 이용한 5G 서비스는) 대개 기업 간 서비스(B2B)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면서 “실제 기업들과 그렇게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기업 사옥이나 대학 캠퍼스, 대형 쇼핑몰, 기차역·공항, 운동 경기장 등에서 기업 혹은 기관과 계약을 맺어 제공하는 형식으로만 28㎓ 대역의 초고속 5G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전국 방방곡곡, 골목 구석구석에서 ‘4G의 최대 20배’라는 초고속 5G 서비스는 사실상 어려워진 것이다.
국내 5G 서비스는 지난 8월 정부의 공식 품질 평가에서 초당 500~800메가비트(Mbps)의 내려받기 속도를 보였고, 이는 4G 속도(158Mbps)의 4~5배 수준에 불과해 ‘4G 대비 최대 20배 빠르다’는 기존 주장과 차이가 크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통신 3사는 이에 대해 “28㎓의 높은 주파수를 활용한 서비스를 하면 속도가 대폭 빨라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28㎓를 이용한 5G 서비스는 B2B에 적합하며, 전국망 서비스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주장도 펼쳐왔다. 28㎓ 주파수를 이용한 5G 서비스는 현재 사용 중인 3.5㎓ 주파수의 5G에 비해 데이터 전송 속도가 훨씬 빠르지만, 전파 도달 거리는 3.5㎓ 대비 15% 이하다. 이 때문에 전국망 서비스를 위해서는 건물과 집마다 5G 기지국과 중계기를 설치해야 해 최소 20조원의 투자비가 필요한 것으로 통신 업계는 추정해왔다. 최 장관의 이날 발언은 이런 통신 3사의 입장이 정부와 충분한 조율을 거쳐 정해진 것을 방증(傍證)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가 5G 불완전 판매 조장했다"
정부가 28㎓ 주파수를 이용한 5G 전국망 서비스 여부에 대해 명확히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와 통신 업계는 그동안 “2020년 하반기에 28㎓ 서비스 투자를 시작할 것”이라고만 밝히고, 28㎓ 서비스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IT (정보 기술) 업계에서는 “그동안 정부와 통신 회사들의 모호한 태도가 통신 소비자들의 기대를 더 부풀려온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통신 소비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5G는 속도가 4G의 20배’라고 언급해가며 5G 서비스를 추켜세웠고, 5G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높았는데 이것이 한 번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과 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집에서 28㎓를 쓸 수 없다면 5G의 매력이 크게 떨어진다”면서 “정부가 5G 서비스의 ‘불완전 판매’를 사실상 조장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에 대해 “28㎓ 5G의 전국망 서비스를 약속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지난 8월 브리핑에서 “5G가 4G의 20배 속도라는 것은 대체로 통신 업계에서 홍보를 하면서 나온 얘기”라고도 했다. 28㎓ 주파수를 이용한 초고속 5G 서비스에 대해 ‘정부가 보장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한편 최기영 장관은 이날 오후 국감에서 “본인 발언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28㎓ 5G 서비스 전국망 서비스는 해당 주파수를 매입한 통신사가 결정할 문제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전국망을 구축해서 사용하기엔 기술적 어려움이 보여서 그런 말씀 드린 것이며 이통사나 주파수를 할당받은 곳에서 하겠다고 하면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