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카메라(CCTV), 드론, 블루투스 스피커 등 전자 제품을 국내에서 유통하려면 ‘반송통신기자재 적합성평가’를 받아야한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외 대기업 다수가 관련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일 국내외 381개 제조업체 및 수입업체가 위조된 시험성적서를 통해 부정하게 전자제품에 대한 적합성평가를 받은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은 방송통신기자재 등의 제조·판매·수입업체가 제품을 시장에 유통하기 전에 기술기준(전파 혼·간섭을 방지하고 인체에 무해함을 증명)에 적합한지 여부를 인증 받은 후에 판매에 나서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기부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기업들은 발급기관이 BACL(미국에 본사를 둔 시험 기관)로 표기된 시험성적서 중 일부가 미국이 아닌 중국에 있는 BACL의 현지 자회사에서 테스트를 받은 것이 확인됐다. 현재 정부는 미국과 유럽, 캐나다, 베트남, 칠레 등 5개국과 국가 간 상호인정협정(MRA)를 맺었는데, 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중국 소재의 기관은 시험성적서 발급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과기부 측은 “중국에 있는 BACL 시험소는 MRA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받은 성적서는 효력이 없으며 이를 제출했을 경우 전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위조 상위권 대부분 중국 업체…삼성전자는 10위
과기부는 지난 5월 15일 관련 업체의 제보를 받고 조사에 착수, 지난 2006년부터 최근까지 기업들이 제출한 BACL 시험성적서를 전수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381개 업체에 이용된 성적서 1700건이 미국이 아닌 중국에서 발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파법에 따라 시험성적서 위조 등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적합성평가를 받았을 경우, 적합성평가가 취소되며 기자재 수거 등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위조 건수가 가장 많은 곳은 중국 감시카메라 업체인 항저우 하이크비전(224건)이었고, 중국 드론업체인 DJI(145건),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136건), 이어폰과 스피커 등을 만드는 국내 기업 브리츠인터내셔널(64건) 등 순이었다. 삼성전자도 23건으로 10위에 올랐다.
전파연구원은 오는 12월에 이들 381개 업체에 대해 차례로 청문할 계획이다. 과기부 오용수 전파정책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미 판매된 제품에 대해서는 소비자 편의를 고려해 (수거·파기에) 상응하는 대안적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며 “정부와 직접 제품을 수거해서 직권으로 시험하는 방법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제품이 유해하다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협력업체인 스피커 제조 업체인 하만이 중국에서 만든 스피커 등 일부 오디오 제품이 문제가 됐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삼성전자 측은 문제를 인지한 뒤 새롭게 제품에 대한 인증을 받아 관련 서류를 과기부에 제출했으며, 현재 제품 판매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협력사가 중국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하며 외주업체를 통해 현지 인증대행기관에 인증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직접 관여한 바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의 통신장비 관련, 통신 업계에서는 “통신장비는 설치 후 전자파 검사를 받으며, 이미 무해하다는 것이 입증된 사안”이라며 “당장은 문제가 된 화웨이의 장비를 수거하거나 파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정부가 앞으로 통신사에게 장비를 직접 수시검사하도록 하는 안을 검토하는 만큼, 앞으로 이와 관련된 점검 부담이 생겨날 가능성은 있게된다.
과기부는 다만 이번에 적발된 업체의 제품의 전자파가 유해한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중국 BACL이 발급한 시험성적서에 대해 미국 BACL이 진위나 효력을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