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아너 매각에 대한 30개 기업의 연합성명이 지역 신문에 게재돼 있다./웨이보 캡처

미국의 반도체 제재로 스마트폰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중국 화웨이가 자사 저가 스마트폰 브랜드인 ‘아너(Honor·榮耀)’를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회사의 주인을 바꿔, 미국의 반도체 제재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전략이다.

17일 오전 중국의 실리콘밸리인 선전시의 다수 지역 신문에는 컨소시업에 참여한 30개 기업이 발표한 ‘연합 성명’이 게재됐다. 성명은 “화웨이는 선전 즈신신(智信新)과 매각 계약을 채결했다”며 “매각 절차가 완료된 후 화웨이는 그 어떤 아너 지분도 보유하지 않게 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 회사 차리고 화웨이 돕기 나서

/연합뉴스

화웨이의 아너를 인수한 ‘선전 즈신신’은 어떤 업체일까. 공시 자료에 따르면 이 기업은 올 9월 27일 차려진 신생 기업으로, 자본금 1억위안(약 168억 7100만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중국 정부와 자금이 받쳐주고 있다. 이 기업의 지분 98.6%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는 ‘선전스마트시티과기발전그룹’이라는 회사인데, 이는 선전시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국유기업이다. 나머지 1.4% 지분마저 선전시 국자위가 주도한 사모펀드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중국 정부가 화웨이의 스마트폰 사업을 살리기 위해 ‘구원투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아너를 인수하는 컨소시엄에는 선전 즈신신을 포함한 30개의 중국 주요 IT·통신 분야 기업들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중국 최대 온·오프라인 가전매장을 운영하는 ‘쑤닝’도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이들 30개 기업은 성명에서 “이번 인수는 아너와 이와 연관된 기업들의 자구책이자 투자”라며 “소비자와 부품 공급사·파트너사 및 이들의 임직원들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어 “소유권의 변화는 아너의 발전 방향을 바꾸진 않을 것”이라며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들 역시 향후 재무적인 측면에서만 보답을 받을 것이며, 부품 공급 등 시장 거래에서는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업체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것을 약속한다”고도 덧붙였다.

매각 가격은 1000억위안(약 16조 86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너는 화웨이가 2013년 설립한 중저가 브랜드로,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며 비용을 절감해왔다. 아시아 시장에서 아너 스마트폰의 평균 가격은 156달러(약 17만원) 수준으로 낮다. 그럼에도 화웨이의 스마트폰 기술을 대폭 적용해 ‘가성비폰’으로 유명하다. 중국 지방 도시를 비롯한 인도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아너 없어진 화웨이, 삼성전자와 경쟁 어려워

아너X10 시리즈/아너

한편 전체 스마트폰 출햐량 중 아너의 비중이 컸던 화웨이는 아너 매각 후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 경쟁에서 급격하게 쇠퇴할 전망이다. 아너 브랜드로 팔린 화웨이 스마트폰은 매년 7000만대에 달한다. 지난해 화웨이의 스마트폰 전체 출하량은 2억 4000만대였는데, 그 중 약 30%를 아너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웨이는 올 2분기에 삼성전자를 제치고 잠시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 1위를 차지하는 등 접전을 펼쳐왔지만, 앞으로는 이 같은 경쟁이 성립되기 어려워 보인다.

반면 아너는 향후 화웨이와 분리돼 미국의 제재로부터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당장 해외 기업으로부터 반도체를 수입하는 길도 열린다. 이에 국내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홍콩 애널리스트 플로라 탕은 “아너는 중국 내에서 2위 스마트폰 브랜드인데, 단기적으론 화웨이를 지지하는 중국내 소비자들 때문에 매출에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화웨이의 R&D(연구개발) 지원, 공급망 공유 등 혜택이 없어져 시장에서 독자적인 우위를 구축해야하고, 해외 시장 공략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