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2M/조선일보DB

직장인 강모(37)씨는 이번 달에만 넥슨의 축구 게임 ‘피파 온라인4′에 100만원을 썼다. 게임 속에서 선수 카드를 사 복권 긁듯이 열면 무작위로 축구 선수가 나오는데, 스타 선수를 얻으려 계속 돈을 쓴 것이다. 강씨는 “매달 30만~40만원을 선수 카드를 구매하는 데 쓴다”며 “이번 달엔 연말 성과급까지 털어넣었다”고 했다. 그는 “정말 원하던 선수가 나올 때 쾌감 때문에 돈을 들이는데 카드를 열 때마다 전부 기존 선수보다 능력치가 낮은 선수만 얻어 허탈하다”고 말했다.

강씨 같은 게임 이용자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는 게 바로 ‘확률형 아이템’이다. 대부분의 국내 게임 업체들은 강한 캐릭터, 만능 아이템을 정가에 파는 방식 대신 앞선 사례와 같은 ‘뽑기’ 형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확률이 ‘로또급’으로 낮아 게임 이용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2M에서 최고의 아이템으로 꼽히는 ‘신화 무기’를 얻으려면 최소 억대를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04년 국내 게임사 넥슨이 최초로 출시한 것으로 알려진 확률형 아이템은 이후 국내 게임사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매년 성장을 거듭한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3사의 지난해 매출을 합치면 8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이제 ‘이용자들의 등골을 빼먹는 사실상 도박형 모델’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일부 게임 이용자들은 판교 게임사들 앞으로 전광판 트럭을 몰고 가 “강원랜드도 슬롯머신 확률을 공개한다”며 시위를 벌였다. 정치권에서도 게임업체의 아이템 확률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확률형 아이템은 개봉 전에는 결과를 알 수 없다. 원하는 상품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구매하느라 수백, 수천만원을 쓰는 게임 이용자가 드물지 않다. 청소년들이 부모 몰래 거액을 결제해 가정 불화로 이어지는 사례도 잇따랐다. 논란이 계속되자 2015년 국내 게임사들이 구성한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업계 자율로 유료 아이템의 경우 습득 확률을 공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게임업체들은 유료와 무료 아이템을 섞어서 추첨하는 방식으로 자율 규제를 피해갔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모바일게임 1위 엔씨소프트가 새로운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하자, 게임 이용자들의 분노가 다시 폭발했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리니지2M 게임 내 최상급 무기인 ‘신화 무기’를 만드는 방법을 공개했다. 이를 만들려면 두 단계의 뽑기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확률이 비공개된 두 번째 단계에선 특정 재료 10개를 모아야 신화 무기를 완성할 수 있는데, 이들 재료 한 개를 뽑을 기회를 얻는 데만 약 440만원을 써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2억원을 써도 얻을까 말까”라는 말이 나온다.

게임 이용자들의 불만이 폭주하면서 지난 16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 및 모든 게임 내 정보의 공개를 청원한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카지노 슬롯머신 같은 도박도 확률을 다 공개하는데 게임도 아이템이 나올 확률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현재 1만명이 넘게 동의한 상태다.

정치권도 확률형 아이템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모든 게임 아이템 확률을 공개하는 내용의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오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확률을 공개하지 않은 사업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게임업계는 “지나친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게임에는 수백개의 아이템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고사양 아이템을 일정 비율 미만으로 제한하는 등의 균형은 대표적 영업비밀”이라며 “이를 모두 공개하는 것은 기업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참에 당첨 확률을 공개해 사행성 논란을 털고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최근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과 게임의 경계선을 넘나들 정도로 위험 수위”라며 “지금이라도 법제화를 통해 확률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