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5일 오후 2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한날한시에 전 직원 앞에 선다. 각각 5000명 이상의 직원들이 두 창업자를 지켜볼 예정이다. 두 사람은 평소에도 이메일과 타운홀미팅 등을 통해 직원들과 소통해 왔지만, 이번은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네이버는 최근 성과급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이해진 창업자와 한성숙 대표가 함께 직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를 갖기로 했다. 사전에 직원들의 질문도 받았다. 카카오는 김 의장이 최근 발표한 5조원 규모 기부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었지만 회사 내에서 인사평가의 정당성 등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이와 관련한 질문도 받기로 했다. 온라인 게시판을 중심으로 ‘창업자가 답하라’는 직원들의 요구가 들불처럼 번지면서 두 창업자가 사내 청문회에 불려나온 셈이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왼쪽)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높은 연봉과 수평적인 기업문화로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의 이미지를 쌓은 두 기업에서 벌어진 사건의 중심에 MZ세대가 있다. 1980년대 초~2000년대 출생한 밀레니얼(M)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MZ세대는 ’20~30대 직장인'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신념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상명하복, 연공서열 중심인 한국 기업들의 사내문화에 도전하고 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대기업에서도 올들어 전례없는 성과급과 인사평가 논란이 확산됐다. SK하이닉스·SK텔레콤·LG에너지솔루션·LG전자 등에서 성과급 산정 기준을 개선하라며 젊은 세대가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기업들은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부모 세대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회사가 미래를 위해 투자하면 나중에 내몫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MZ세대는 당장의 보상을 중시한다”면서 “이들은 회사를 본인 커리어를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직하는 등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시키는대로 해라’ 안 통해… 불공정하다 싶으면 상사에 할말 한다

“채용설명회에서 담당자가 삼성전자만큼 준다고 했는데 왜 안 지켜지는 겁니까.”

지난달 29일 SK하이닉스 이석희 대표와 2만8000명 직원 전원에게 이런 항의를 담은 이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발신자는 이 회사 4년 차 직원이었다. 그는 ‘회사가 발표한 성과급 산정 방식이 불투명하고 호실적에도 성과급이 적은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앞선 질문에 대해 “회사가 직접 답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직후 온라인 직장인 익명게시판을 중심으로 SK하이닉스 직원들의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에서 받은 연봉을 반납하겠다”고 밝히고, 이석희 대표가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삼성전자로 이직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SK하이닉스는 결국 성과 평가 기준을 직원들이 알기 쉽게 바꾸고 자사주도 지급하기로 했다. 문제 제기부터 수습책이 나오기까지 불과 일주일 만에 이뤄진 ‘MZ세대의 반란’이었다. SK하이닉스가 불을 지핀 성과급 논란은 이후 삼성전자, SK텔레콤, LG에너지솔루션, LG전자 등으로 순식간에 확산됐다.

성과급 논란은 기존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MZ세대의 가치관과 행동 방식을 강렬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을 경험한 MZ세대는 그런 우회로 대신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게시판이라는 지름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만큼 파급 속도도 빠르고 효과도 높다.

◇온라인에선 누구나 평등

성과급 논란은 기존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MZ세대의 가치관과 행동 방식을 강렬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기성세대는 임금에 대한 불만을 이슈화하는 것을 노조의 전유물처럼 여겼다. 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고, 공청회를 개최한 뒤 회사와 만나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파업을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을 경험한 MZ세대는 그런 우회로 대신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게시판이라는 지름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만큼 파급 속도도 빠르고 효과도 높다.

목표도 명확하다. MZ세대의 반란에는 오너 경영자를 인신 공격하거나 ‘OOO 물러나라’는 식의 노조식 구호는 등장하지 않는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기업들의 성과급 논란은 철저히 성과급 체계 개선에 국한됐다. 조대곤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원하는 것을 명확하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MZ세대의 특징”이라며 “온라인에서는 누구나 평등한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체 대화방에서 상사가 있어도 할 말은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대기업에서도 올들어 전례없는 성과급과 인사평가 논란이 확산됐다. SK하이닉스·SK텔레콤·LG에너지솔루션·LG전자 등에서 성과급 산정 기준을 개선하라며 젊은 세대가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기업들은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MZ세대가 조직에 대한 충성심보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중시하는 세대라고 본다. 아버지 세대와 같은 ‘평생 직장’이라는 관념이 약하고, 승진을 하기 위해 조직 내에서 희생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사원들이 배치 부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심지어 자기가 가고 싶은 부서장들을 찾아다니며 받아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 이직은 당연한 선택이라는 인식도 강하다. 실제로 최근 게임업계에서는 넥슨이 신입 사원을 비롯한 전 직원의 연봉을 800만원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곧바로 넷마블도 같은 금액을 올려주기로 했다. 엔씨소프트 역시 임금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회사의 개발자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 참지 않는 젊은 세대를 다독이기 위한 선제 조치인 셈이다.

◇공정성·투명성에 목매는 세대

MZ세대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주관적인 기준이 반영되는 수행평가 등을 거치면서 평가와 보상의 기준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하다. 치열한 입시와 취업 과정을 거치면서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인식도 높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불거진 성과급 논란에서도 반도체 사업부 직원들이 “왜 우리가 상대적으로 돈을 적게 버는 스마트폰보다 적게 받아야 하느냐”면서 절대적인 금액이 아닌 상대적인 평가 기준을 문제 삼았다. 이찬 서울대 경력개발센터장은 “자기 자신의 성과를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회사에서 협업을 통해 얻어진 성과의 보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며 “점차 MZ세대가 많아지고 있는 만큼 회사도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평가 기준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MZ세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태어난 밀레니얼(M)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용어. 밀레니얼 세대는 2000년대의 주역이 될 세대라는 뜻이다. SNS·스마트폰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