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상자 상하차 전용 로봇인 딜. 시간당 최대 1800개의 택배 상자를 내릴 수 있다. /피클 로봇

미국 피클 로봇은 지난 14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물류산업전시회 프로맷(ProMat)에서 트럭에서 택배 상자를 내리는 로봇 ‘딜(dill)’을 발표했다. 딜은 로봇팔 하나로 최대 25㎏의 상자를 시간당 1800개까지 내렸다.

현대차 계열의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지난달 29일 물류 로봇 ‘스트레치’를 공개했다. 스트레치 역시 빨판이 달린 로봇팔로 23㎏ 무게를 집어 내릴 수 있다. 1시간에 상자 800개를 내려 인간 작업자와 맞먹는 속도를 보였다.

택배 상자 1시간에 1800개까지 내리는 로봇팔. /피클 로봇

코로나 대유행으로 전자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국내외 물류 업체들이 로봇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 월마트 계열의 창고형 매장인 샘스클럽도 전자상거래 매출이 급증하자 지난해 12월 전자상거래 주문 처리를 위한 자율 주행 로봇을 도입했다. 가전업체인 GE어플라이언스와 물류업체 NLS도 최근 팔레트를 옮기는 로봇을 대량 도입했다.

딜과 스트레치가 주목받는 것은 물류 로봇 중에서 택배 상자 상·하차 업무에 특화돼 있기 때문이다. 상·하차 로봇은 물류 창고에서 자동화가 가장 더딘 분야이기도 하다. 택배 상자를 싣고 내리는 작업은 택배 관련 업무 중에서도 가장 노동 강도가 높아 인력난이 심하다. 물류 현장에서 로봇들이 상자가 쌓여 있는 팔레트를 통째로 옮기고 있지만, 팔레트나 트럭에서 상자를 하나씩 꺼내 이곳저곳으로 옮기는 작업은 여전히 사람이 한다. 이번 로봇들은 물류 업계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안전사고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동화 인프라 없어도 로봇 활용 가능

피클 로봇은 2018년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들이 창업했다. 이들은 독일 쿠가의 산업용 로봇팔에 레이저 반사파로 거리와 장애물을 감지하는 라이다 카메라 두 대를 장착했다. 여기에 인공지능 학습 기능까지 갖췄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스트레치 로봇

로봇이 상자를 집다가 실수해도 사람이 바로 잡으면 인공지능으로 배운다. 덕분에 창고에 별도 자동화 인프라가 없어도 사람과 같이 작업을 할 수 있다. 앤드루 마이어 피클 로봇 대표은 “공정 자동화, 최적화 없이도 바로 로봇을 쓸 수 있어 로봇 도입에 드는 경비를 90%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필요한 장소에서 스트레치 로봇만 가져다 놓으면 알아서 상자를 집어 원하는 곳에 옮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중소 물류업체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클 페리 보스턴 다이내믹스 부회장은 미국 IT(정보기술) 전문지 ‘더 버지’ 인터뷰에서 “전 세계 물류 창고의 80%가 자동화 설비가 없다”며 “자동화가 비싸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주저하던 업체들이 공략 대상”이라고 밝혔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스트레치 로봇이 물류 창고에서 상자를 부리는 모습. 별도의 자동화 투자 없이 로봇을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회사는 밝혔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전자상거래 성장이 물류 로봇 발전 이끌어

해외에서는 이전부터 물류에 로봇을 도입해 성과를 거뒀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2012년 7억7500만 달러에 로봇 제조업체인 키바시스템스를 인수한 뒤 미국 전역 물류센터에 팔레트 이송용 로봇 약 5만 대를 배치했다. 중국 1위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도 아마존의 뒤를 따랐다. 로봇의 역할도 택배상자 상·하차, 포장, 선별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이달부터 경기 이천시 물류센터에서 무인 운송 로봇을 도입했다. 국내 최대 무인 물류센터인 CJ대한통운 메가허브 곤지암은 택배상자 상·하차만 사람이 하지만, 이 역시 곧 로봇 기술로 자동화한다는 계획이다.

물류 로봇은 당분간 고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 초 리서치앤드마켓은 물류용 자율 이동 로봇과 무인 운송 로봇 시장이 2020년 25억달러에서 매년 35% 성장해 2026년에는 132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물류 로봇의 성장 동력은 급성장하는 전자 상거래 산업이다.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전자 상거래는 지난 10년간 매년 20%씩 성장해 2019년 3조5000억달러에 이르렀다. 2026년에는 7조50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소매에서 전자 상거래 비중은 지난 10년간 2%에서 13%로 성장했으며, 2026년까지 22%를 차지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