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분당 네이버 사옥 앞에서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이 최근 네이버 직원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중간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장형태 기자

“임원A와 미팅 할 때마다 내가 무능한 존재로 느껴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지난 3월 26일, 네이버 개발자)

최근 네이버 40대 개발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네이버 노조가 고인의 생전 메신저 내용과 주변 직원과의 대화 내용을 공개하고,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지난 3월 이해진 창업자와 한성숙 대표가 참여한 노사협의회 회의에서 관련 문제가 제기됐으나 사실상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은 7일 분당 네이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은 지나친 업무 지시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으며, 상급자로부터 부당한 업무지시와 모욕적인 언행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압박받아 왔다”며 “2년 가까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인과 동료들이 다양한 경로로 조치를 요구했으나 회사가 문제를 묵살했다”고 밝혔다.

네이버 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 과도한 업무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히 지도 조직이 네이버랩스에서 최인혁 COO(최고운영책임자) 직속 조직으로 넘어온 뒤부터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고 노조는 밝혔다. 고인은 지난 1월 “두 달 짜리 업무가 매일 떨어지고 있어 매니징하기 어렵다”고 하소연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고인은 올해 5월 네이버 지도 서비스의 신규 출시를 앞두고 5월 내내 고강도 업무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개발자였던 고인은 임원으로부터 업무 영역이 아닌 기획안 작성 등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았다고 노조는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3월 고인은 동료에게 “임원과 미팅할 때마다 자신이 무능한 존재로 느껴지고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며 “계속 이렇게 일할 수 밖에 없나?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또한 고인의 주변 동료들은 “임원A가 회의 중 고인이 모욕감을 느낄 발언을 했다”고 노조에 증언했다. 지난 5월 7일, 프로젝트 회의 중 고인이 의견을 제시하자 임원 A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고 면박을 줬다며 노조는 밝혔다.

노조는 회사 및 경영진이 이 사실을 알고도 그동안 묵인하고 방조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2019년 1월, 임원 A와 최인혁 COO가 함께 참여한 회의에서 직원들이 A의 문제되는 과거 행적을 지적했다. 임원 A는 일부 사실을 인정했으며, 최 COO는 “임원 A에게 문제가 있으면 그에게 말을 하고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 말하라.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후 그해 5월, 고인을 포함한 리더(팀장) 14명이 최인혁 COO를 찾아가 “임원 A가 ‘당신은 패착이다’ ‘너는 이 일하는데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폭언을 한다”며 토로했으나, 이후 조치가 취해지기는커녕 당시 회의에 참여한 일부 리더는 직위 해제를 당했다고 노조는 밝혔다.

또한 올해 3월 이해진 창업자와 한성숙 대표가 참여한 노사협의회에서 임원 A가 책임리더(임원급)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인사담당 임원 “인사위원회가 검증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네이버 노조는 “고인의 사망은 회사가 지시하고 회사가 방조한 명백한 업무상 재해”라며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더욱 상세한 내용을 조사할 예정이며, 회사는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다.

네이버 측은 “지난 2일부터 사외이사로 구성된 리스크관리위원회가 외부 기관에 의뢰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관련 내용은 노사협의회와 투명하게 공유할 것”이라며 “조사는 대략 3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네이버는 지난 2일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최인혁 COO와 임원 A씨 등 4명을 직무정지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