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현지 시각) IBM은 독일 에닝겐에 있는 자사 연구소에서 ‘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양자(量子)컴퓨터를 공개했다. 양자컴퓨터는 제작이 까다로운 데다 첨단 기술이기 때문에 IBM은 미국에도 극소수 기업·기관에서만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양자화학을 전공한 과학자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최근 IBM 등 글로벌 기업과 함께 국가 차원의 양자컴퓨터 기술 육성을 추진하면서 양자컴퓨터 반입이 성사됐다. 독일은 향후 5년간 양자컴퓨터 개발에 20억유로(약 2조7000억원)를 투입하고, 유럽연합(EU) 예산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도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다. 일본도 조만간 IBM의 양자컴퓨터를 들여올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양진경

미국·일본·유럽·중국 등 주요국이 양자컴퓨터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양자컴퓨터가 인공지능(AI)·바이오 신약 등 미래 산업과 직결되는 인프라로 떠오르면서 상용화 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과학자들은 수퍼컴퓨터를 비롯한 기존 디지털컴퓨터를 훌쩍 뛰어넘는 성능을 가진 양자컴퓨터가 수많은 난제 해결의 핵심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날 경우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백신·치료제 개발을 앞당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전에 투입되고 있는 양자컴퓨터

양자컴퓨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에서 적용되는 양자역학을 이용한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물질이 하나의 상태에 있지만, 양자물리학에서는 빛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인 것처럼 두 상태가 중첩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현재 수퍼컴퓨터를 포함한 모든 디지털 방식의 컴퓨터는 전자(電子)의 유무에 따라 0과 1의 비트(bit)로 정보를 표현하고 계산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0과1을 동시에 처리한다. 이를 큐비트(qubit)라고 한다. 한 칸에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큐비트 개수가 많아질수록 2의 제곱으로 연산 속도가 빨라진다. 2비트는 2가지 연산을 하지만, 2큐비트는 동시에 4개의 연산을 수행하는 식이다. 비트를 늘리는 것보다 큐비트를 늘리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인 것이다. 현재 양자컴퓨터 최고 성능은 65큐비트 수준이다.

양자컴퓨터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빠르게 발전하며 수퍼컴퓨터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 201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수퍼컴퓨터가 1만년 걸릴 난수 증명 문제를 양자컴퓨터로 단 200초 만에 해결했다고 밝혔다. 양자컴퓨터가 수퍼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능가하는 이른바 ‘양자 초월’이 처음 달성된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다양한 연구·산업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차세대 배터리 개발이다. 현재 전기차·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리튬 이온 배터리는 주 원료인 리튬 매장량이 부족해지면서 이를 대체할 차세대 배터리 연구가 활발하다. IBM은 자동차 업체 다임러와 함께 매장량이 풍부한 황을 이용해 기존 리튬 배터리보다 전기 저장 용량이 10배 많고, 폭발 위험이 없는 ‘리켈·황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다. IBM은 양자컴퓨터로 수억개의 화학 반응 시뮬레이션을 분석해 가장 안정적인 분자 상태를 찾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우주 탄생의 비밀을 푸는 연구에도 쓰이고 있다. 초대형 입자 가속기에서 초미세 입자가 충돌하면서 1초당 300기가바이트의 데이터가 나오는 데 기존엔 42국에 있는 170개 데이터센터에 나눠 이를 분석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현재 양자컴퓨터 1대로 이 데이터들을 모두 분석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양자컴이 수퍼컴 대체하진 않아

양자 컴퓨터가 본격 상용화돼도 기존 디지털컴퓨터가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자컴퓨터와 디지털컴퓨터의 연산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데다, 현재까지 개발된 양자컴퓨터는 범용 컴퓨터라고 하기엔 아직 초보 단계이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가 수퍼컴퓨터 연산 성능을 앞선 양자 초월도 아직은 제한된 분야에서만 적용되고 있다. 상용화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현재의 공학 기술로는 1, 2개의 큐비트를 오래 유지하기 쉽지 않다. 큐비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극저온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상태를 만들거나 진공(眞空) 상태를 만들어야 하는 등 제작 조건이 까다롭다. 현재 기술로는 관측한 양자값들이 이상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연산에 오류도 생긴다. 양자컴퓨터 권위자인 IBM 백한희 박사는 “단순 병렬 연산은 수퍼컴퓨터, 단백질 3차원 구조 분석, 기후 예측과 같은 복잡한 문제는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는 식으로 상호 보완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