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미국 증시에 직상장한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을 강력 제재한 데 이어 자국 기업의 해외 상장을 아예 차단하는 조치에 착수했다.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판공청과 국무원판공청은 지난 6일 ‘증권 위법 활동을 엄격히 타격하기 위한 의견’이라는 문건을 통해 “해외 상장 기업에 대한 심사·관리 감독 체계를 수립하고 이 기업들의 데이터 보안·기밀유지 등에 대한 규정을 조속히 완성시킬 것”이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공산당중앙판공청과 국무원판공청은 우리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과 국무조정실에 해당하는 핵심 권력기관이다. 관영 매체 펑파이신문은 7일 “금융 당국이 아닌 두 판공청 명의로 자본시장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오는 것은 사상 처음”이라며 “그 파급력이 거대할 것”이라는 분석을 전했다.

두 권력기관이 동시에 내놓은 이번 안에 대해 중국 IT 업계와 금융 업계는 ‘미 뉴욕 증시나 나스닥 상장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중국 혁신 기술 기업들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한다. 중국 현지에선 조만간 중국 정부가 증권법 개정을 통해 지금까지 별다른 규제가 없었던 해외 상장을 허가제로 바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허가가 없으면 해외 상장이 원천적으로 봉쇄될 수 있다.

◇중국, 미국에 ‘인질’ 잡히지 않겠다는 몸부림

중국 정부는 해외 상장 기업들에 대한 규제 명분으로 ‘데이터 안보’를 내세우고 있다. 디디추싱처럼 중국 교통·지리 데이터와 사용자 개인 정보를 갖고 있는 기업이 미국에 상장하면서 데이터를 해외 반출하면 국가 안보 위협에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중국 내에서 서비스하는 모든 IT 기업들에 중국에서 생성된 모든 데이터를 중국 현지 데이터센터에 보관하고 중국 정부의 허락 없이 해외로 반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해외 상장을 막는 속사정은 따로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업계에선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미국 증시에 상장한 자국 기업들이 인질이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군과 연계된 중국 기업들을 미국 증시에서 퇴출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올 1월 중국 3대 통신사인 차이나텔레콤, 차이나유니콤, 차이나모바일이 뉴욕 증시에서 상장 폐지가 결정됐다. 그 여파로 홍콩에 상장된 이 3사의 주가도 폭락해 중국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지는 등 거센 후폭풍이 일었다. 미국 정부는 또 지난해 12월 ‘외국기업책임법’을 통과시켰다. 2025년부터 미 증시에 상장된 외국 기업에 대해 외국 정부가 설립했거나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면 증시에서 퇴출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중국 인터넷 매체 시나닷컴은 당시 “미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은 언제든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고 논평했다.

◇미국 자본 싹쓸이하던 中 기업,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해외 상장을 사실상 차단하겠다는 중국 당정의 발표에 중국 스타트업들은 충격에 빠졌다. 당장 알리바바가 투자한 자전거 공유 스타트업 ‘헬로’, 텐센트가 투자한 교육 스타트업 ‘스파크 에듀케이션’과 의료 데이터 스타트업 ‘링크독 테크놀로지’ 등의 미국 상장 계획이 줄줄이 어그러질 위기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중국 스타트업들은 중국 본토 증시보다 미 증시를 선호한다. 상장 요건이 간소한 데다 전 세계 자본이 몰리며 기업 가치도 후하게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월가의 투자은행들도 중국 기업의 상장을 주관하며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다. 미·중 테크 전쟁이 격화하는 와중에도 중국 테크 기업과 미국 자본시장의 ‘밀월’이 유지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실제로 올 1~7월 사이에만 중국 기업 36곳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며 자금 136억7200만달러(약 15조6300억원)를 조달했다. 지난해 전체 기록(34사, 122억6000만 달러)을 이미 추월했다.

두 판공청은 “해외 상장한 중국 기업에 대한 관리 감독과 법률적 책임도 구체화하겠다”고 명시했다. 이미 미국 증시에 상장한 알리바바·바이두·웨이보 등 중국 대표 IT 기업들에 대해서도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