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king for a dungeon party(던전을 함께 공략할 파티원을 구합니다).”
“ㄱㄱㄱ(가자라는 뜻의 ‘고(go)’의 약자)”
17일 엔씨소프트의 게임 프로그램 ‘퍼플’ 채팅창에는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대화가 실시간으로 오가고 있었다. 지난달 15일 엔씨소프트가 채팅 서비스에 ‘자동 번역 AI(인공지능)’ 기능을 적용한 후 국내외 이용자 간 언어 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현재 한국·일본·대만에 도입된 이 시스템은 총 4개 언어(한·영·일·중)의 쌍방향 번역을 제공한다. 이용자는 외국어 메시지 옆에 뜬 지구본 모양 버튼을 클릭하면 번역된 내용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26일 경기도 판교 엔씨소프트 본사에서 만난 이연수 랭귀지AI랩 실장(상무)은 “구글이나 네이버 등 IT 기업에서 개발한 번역 기술은 아이템·기술명 등 전문 용어와 신조어가 많은 게임 산업에 바로 적용하기 어려워 직접 번역 기술 개발에 나섰다”고 밝혔다.
실제로 구글 번역기는 게임 이용자들의 말을 번역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일례로 일본 이용자들은 게임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아리가토고자이마스)’를 줄임말인 ‘あざす(아자스)’로 쓰는 경우가 많다. 구글 번역은 이를 번역하지 못해 원문 그대로 옮기는 반면, 엔씨소프트의 번역 AI는 정확하게 번역해낸다. 또 대만 이용자들이 자주 쓰는 주음(발음기호)도 구글이 번역 못하는 특수 언어다. 예컨대 ‘ㄅ’라는 부호는 한자가 아닌 ‘비읍’ 발음을 나타내는 주음이다. 대만 이용자들은 이 부호를 ‘不(불)’의 대체재로 쓴다. ‘따라 싸우지 말자’는 뜻의 “ㄅ要跟打”는 구글에서 “ㄅ싸우고 싶다’고 표시되지만, 엔씨소프트 엔진은 뜻을 정확하게 전달한다. 이 실장은 “이를 위해 구어체에 능통한 외국 현지인들을 채용하고, 쌍방향 번역 데이터만 5000만 쌍 이상을 축적했다”고 했다.
다국적 이용자들을 상대하는 만큼 비속어, 비하 발언을 걸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실장은 “예컨대 중화권에선 서양인을 ‘양구이즈(洋鬼子·서양 악마)’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단어는 ‘western devil(서양 악마)’이라고 의역하지 않고 ‘yangguizi’라는 발음으로 직역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게임처럼 ‘특화된’ AI 번역 기술은 최근 활용도가 크게 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체 번역 앱인 ‘H-트랜스레이터’를 개발해 해외로 보내는 공문·업무 이메일 번역에 사용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등 전문 용어를 보다 정확하게 번역하는 게 특징이다. 스타트업 배링랩이 개발한 법률 전용 번역 AI도 있다. 일반 번역 서비스보다 법률 용어가 정확하게 번역돼 로펌과 특허법인에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