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2시. 서울 마곡나루역에서 서울식물원으로 향하는 연결 통로 벽면 유리창 너머로 버터헤드상추, 이자트릭스 같은 엽채류 3500여 포기와 새싹삼 1만 뿌리가 식물 재배기 위로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스마트팜 업체 해피팜협동조합이 지난 2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180㎡(55평) 규모의 도심 속 ‘첨단 농장’이다.
이날 외부 체감 온도는 36℃ 정도였지만, 멸균 가운을 입고 들어선 농장 안은 서늘했다. 농업에 ICT(정보통신 기술)를 적용한 자동 제어 시스템으로 엽채류가 자라기에 최적 환경인 온도 20~22도, 습도 70도를 유지한다고 했다. 햇빛 역할을 하는 발광 다이오드(LED) 조명은 각 농작물에 맞춰 다른 빛을 쪼여주고 있었다. 최정원 해피팜협동조합 대표는 “재배 공간을 5단으로 층층이 쌓아 올린 수직 농장이기 때문에, 평수 대비 생산성도 5배 높다”고 했다.
◇폭염·폭우 이상 기후…안정 수급 가능한 스마트팜 각광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 농업 기술인 ‘애그 테크’(AgTech)가 각광받는 가운데, 도심 속 지하철 역사 안이나 방치된 지하 상가, 유휴 공간에 스마트팜을 조성하는 ‘메트로팜’(Metro farm)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도심 개발로 밀려난 외곽 지역 농장에서 농작물을 운반하면서, 농작물 유통 비용은 올라가고 신선도는 떨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장을 압축형으로 만들고 자동화해 도심에 설치하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역 지하 상가에는 스마트팜 기업 넥스트온이 지난 1월 완공한 1652㎡(500평) 규모 농장이 있다. 10여 년 전부터 사용자를 찾지 못해 방치돼 있던 공간인데, 농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농장 안에서는 보랏빛 LED 조명 밑에서 채소가 자란다. 5단 수직 농장으로 실재배 면적은 2500평으로 커진다. 연간 100여t의 상추·허브 수확이 가능하다. 최근엔 농장 안에 최대 200kg까지 운반 가능한 가로·세로 50cm짜리 인공지능(AI) 자동화 로봇도 도입했다. 최성광 넥스트온 전무는 “시중 칩보다 방열이 절반 수준인 식물 전용 LED 조명을 자체 개발해, 실내 온도를 낮추는 데 드는 비용을 줄였다”고 했다.
지하철 상가와 같은 공간이 스마트팜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온도 조절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스마트팜은 생육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최고의 생산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전기 요금이 운영비 대부분을 차지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하철 공간은 이미 단열 시설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온도 유지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천왕역·답십리역·을지로3가역 등 서울 지하철 다섯 역에 스마트팜이 설치돼 있다.
최근 폭염·폭우 등 이상 기후로 채소 가격 등락이 반복한다는 점도 스마트팜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다. 날씨와 무관하게 정해진 날 정확한 중량을 수확하기 때문에, 안정적 공급이 가능해 농산물 값이 크게 뛸 일이 없다. 컨테이너를 활용한 모듈형 수직 농장과 사물인터넷(IoT) 기반 농장 관리 시스템 특허를 가진 스타트업 엔씽은 작년 6월 이마트와 계약을 맺고, 여덟 점포에 로메인 상추·바타비아·버터헤드·바질 등 채소 4종(種)을 이틀에 한 번씩 출하해 납품하고 있다. 당시 이마트가 엔씽과 계약을 맺은 이유도 겨울 한파를 앞두고 안정적인 채소 공급을 하려는 것이었다. 엔씽 관계자는 “노지에서 재배하는 채소는 찜통더위에 잎이 녹고 한파에 얼어버리지만 우리는 날씨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스마트팜 업체 팜에이트는 총 1200여 평에 달하는 평택 본사의 인도어팜·스마트온실과 충남 천안 농장 등에서 하루 1.5t 이상의 샐러드 채소를 생산한다. 이 채소는 매일 서브웨이·KFC·버거킹 등 프랜차이즈 업체들과 아워홈·위메프·쿠팡 등에 납품된다.
◇기업·정부 속속 뛰어드는 ‘애그 테크’
정부와 기업도 스마트팜 육성·개발에 팔을 걷고 나서고 있다. 농식품부는 올 하반기 조성을 목표로 경북 상주·전북 김제 등 4곳에 스마트팜 혁신 밸리를 만들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 26일 한국로봇융합연구원과 5G 네트워크 활용한 스마트팜 로봇 공동 연구 협약을 체결하고, 이르면 연내 도입을 목표로 이동 통신에 기반한 무선 로봇 연구를 진행한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팜 시장 규모는 2018년 1조9741억원에서 연평균 6.7% 성장해 오는 2024년 2조9131억원에 이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