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는 컴퓨터 게임 프로그래머를 꿈꿨다. 그래서 전산학과 전공을 목표로 카이스트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곧 좌절했다. “그렇게 재미있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이었는데 전공학문으로 들어가니까 흥미를 완전히 잃었어요. 공부를 할수록 소화되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 같았죠.”

그는 고민에 빠졌고, 3개월간 자신의 가치관을 되짚어봤다.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

임성원 임프리메드 대표. /임프리메드

미 실리콘밸리에서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임프리메드’를 이끄는 임성원(38) 대표의 이야기다. 임프리메드는 인공지능 모델과 실험실 테스트를 통해 혈액암에 걸린 반려견을 대상으로 어떤 항암제가 효과적인지를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 세계 사망률 1위 질병은 암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강아지와 고양이도 암에 걸린다. 한 해 강아지와 고양이 각각 600만마리가 암 진단을 받는다. 현재 시중엔 반려견용 혈액암 치료제가 16개 나와 있는데, 치료 케이스 마다 효과가 다르다. 어떤 반려견에게는 A약이 어떤 반려견에게는 B약이 더 잘 맞는다. 임프리메드는 이를 미리 검증해 수의사들에게 어떤 항암제가 해당 반려견에게 더 잘 맞는지를 알려준다. 최근 미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에서 만난 임성원 대표는 “2018년 기술을 개발해 지금까지 2300마리의 반려견 케이스를 검증했다”고 말했다.

/임프리메드 홈페이지 캡처

임 대표는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과학고를 거쳐 2001년 카이스트에 입학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 재수를 통해 의대 진학을 고려했지만 고민 끝에 생명화학공학과를 택했다. “은사이신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님이 ‘의사들도 고귀한 일을 하지만 공학자로서 신약이나 치료법을 개발하면 수억명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지 않으냐’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내 힘으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UC버클리를 거쳐 스탠퍼드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땄다. 그때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2011년에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사람마다 항암제 효과가 다를 수 있고, 맞춤형 처방이 필요하다는 발표를 들었다”며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는 신약보다 기존 나와있는 항암제를 최적화해 사람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4월 스탠퍼드를 졸업하고 그해 5월 임프리메드를 창업했다. 그는 우선 암세포가 체외에서도 일정기간 살아있는 용액을 개발했다. 이 암세포에 시중에 나와 있는 항암제를 넣어 어떤 약이 효과가 좋은지 보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의기양양했지만 쉽지 않았다.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에 있는 페어벤처스에서 초기 지원을 받았는데, 스타트업 데모데이에서 사업 모델을 발표했더니 큰 주목을 받았었죠. 어떤 투자자는 대기실로 찾아와 ‘일단 너 투자 받는 거야’라고까지 말했어요. 하지만 저희 테스트를 위해서는 수술실에서 바로 떼어낸 암세포가 필요한데, 실제 사람 암환자의 살아있는 암세포 샘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1~2개 임상샘플 시험결과만 있어도 바로 투자하겠다는 곳도 있었는데 결국 실패했죠.”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 규제 때문에 기업이 암환자의 샘플을 얻기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임성원 임프리메드 대표. /김성민 기자

막막해진 그는 ‘우회로’를 발견했다. 반려견이다. 그는 “강아지 암세포는 수의사를 통해 얻기가 쉬웠어요. 우선 혈액암에 걸린 반려견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이후 사람에 적용하자고 계획을 바꿨습니다. 장애물을 한 번에 넘는 게 아니라 사다리를 세우자는 심정이었죠.”

임프리메드의 기술은 반려견 시장에 화제를 모았다. 지금껏 미국 내 177명의 수의사와 32개 주 120개의 동물병원과 네트워크를 맺고 혈액암에 걸린 반려견에 가장 효과적인 항암제를 분석해줬다. 미국 내 종양학 전문 수의사 전체의 4분의 1 규모다. 그는 “우리가 추천한 약으로 반려견 암을 치료하면 치료 기간이 확 줄어든다는 수의사들의 반응이 많다”고 했다. 올해부터는 서비스를 유료화로 전환했다. 임프리메드는 올해 3월 프리A 투자를 받아 770만달러(89억원)를 유치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수억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올해부터 원래 꿈꿨던 사람 대상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2018년 설립했고, 공동창업자인 구자민 홍익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임프리메드코리아가 강릉아산병원, 홍익대와 함께 임프리메드의 서비스가 사람에게도 적용되는지 검토에 들어갔다. 임 대표는 “일단 강아지 암세포를 체외에서 일정 기간 살리는 용액이 사람의 암세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했다.

임성원 임프리메드 대표. /김성민 기자

목표는 앞으로 6년 반 안에 정부 인허가를 받아 실제 암환자 대상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임 대표는 “기술 개발에 2~5년이 소요되고, 정부 인허가를 받는 것까지 포함하면 4~6.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고 했다.

창업 5년 차인 그에게 실리콘밸리에서의 창업 환경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실리콘밸리는 밖에서 보면 조용하고 릴렉스 돼 있는데 안에서 보면 굉장히 다이내믹하다”며 “스타트업도, 투자자도, 변호사도 이곳에 다 있고 비즈니스에 ‘레이저 포커스’를 한다. 창업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했다. 하지만 창업의 어려움도 있다. “창업은 아무리 다짐하고 시작하더라도 생각한 것보다 훨씬 힘들다”며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끼며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꿈은 크다. 내년 상반기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토대로 반려견을 넘어 고양이 대상 혈액암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사람 암환자 대상 기술 개발도 지속한다. “우리 기술로 항암 치료의 효과를 높여 지금도 고통받는 암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정말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