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업체인 페이스북이 게시물 정책을 위반한 콘텐츠를 걸러내는 과정에서 사람을 차별한 것으로 드러났다. 폭력, 선동, 자극적인 내용 등 페이스북 검열 정책을 위반한 게시물을 누가 올렸느냐에 따라 삭제 여부가 달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3일(현지시각) 페이스북이 엑스체크(Xcheck)라는 화이트리스트를 운영하며 정치인과 스포츠 스타, 언론인, 인플루언서 등 유명인의 게시물을 일반 사용자보다 보호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같은 게시물이라도 유명인이 올린 게시물에 대해서는 삭제 등 검열이 늦게 적용되고, 삭제되는 비율도 일반인보다 작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이렇게 보호한 유명인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 브라질 축구선수 네이마르 등 작년 기준 58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똑같다”면서 차별한 페이스북
그동안 페이스북은 가짜뉴스, 혐오, 선동 게시물을 삭제하는 게시물 정책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밝혀왔다. 페이스북은 일반 사용자가 성적인 콘텐츠, 증오 표현, 폭력 선동 등의 게시물을 올리면 자동 시스템으로 해당 콘텐츠를 즉시 삭제하거나 검열했다. 하지만 이 원칙은 유명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페이스북이 사업 초기 유명인의 게시물을 건드릴 경우 회사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우려해 이러한 ‘화이트리스트’를 설계했다”고 했다. 유명인이 정책에 위반한 게시물을 올릴 경우, 페이스북은 이를 즉시 삭제하지 않고 게시물을 검토하는 정규직 직원으로 구성된 팀에 이를 맡겼다. 이 경우 명백하게 삭제를 해야 할 게시물이라도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일반인이 올린 게시물보다 더 늦게 삭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2019년 브라질의 축구선수 네이마르는 한 여성에게 강간 혐의로 고발을 당하자, 자신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해당 여성의 이름과 나체 사진을 올렸다. 강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해당 게시물은 ‘동의 없는 사적인 이미지’ 처리 규정에 따라 즉시 삭제된다. 게시물을 올린 사람의 계정도 삭제되는 것이 규정이다. 하지만 네이마르의 게시물은 삭제당하지 않았다. 하루 늦게 삭제됐지만 그 사이 5600만명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이 게시물을 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페이스북의 특혜를 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지지 세력을 집결시키는 발언을 이어갔다. 일각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정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페이스북은 이를 무시했고, 지난 1월 6일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건이 불거지자 뒤늦게 트럼프의 계정을 무기한 정지했다. 그동안 페이스북의 화이트리스트 보호를 받은 것이다.
◇페북 “화이트리스트 관행 없애기 위해 노력”
페이스북은 이러한 화이트리스트 관행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페북 직원들은 회사가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고 본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2019년 페이스북 내부 검토 문서에 따르면, 페이스북 직원들은 “화이트리스트 문제는 회사의 거의 모든 영역에 만연해 있다”며 “이는 많은 페이스북 이용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노출시켰다”고 했다.
페이스북이 앞으로 이런 차별적인 화이트리스트를 없애고 공평한 게시물 삭제 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까. 테크 업계에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 문제가 언론·출판, 발언의 자유와 밀접하게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우려한 대로, 페이스북이 정치인들의 과도한 주장과 가짜뉴스를 차단하면서 정치권에서는 페이스북에 반발하는 사례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여러 보수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미국 텍사스주의 공화당 소속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지난 10일(현지시각)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이 보수파를 정치적으로 검열하고 있다”며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SNS 업체가 관련 게시글을 삭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