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 최상위권 대학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이모(25)씨는 지난 3월 중고거래앱 스타트업 당근마켓에 입사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네이버·카카오 같은 IT 대기업을 원하는 대로 골라 갈 수 있는 스펙이지만 이씨는 “애초 대기업은 고려도 안 했다”고 했다. 간판보다는 직접 구상한 아이템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직장을 꿈꿔왔다는 것이다. 더구나 당근마켓은 대우도 국내 최고 수준이다. 올해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에 오른 당근마켓은 최근 개발자 초봉을 대기업 이상인 6500만원으로 올렸다. 업계 최고 수준 계약금과 스톡옵션(주식)은 별도다.

당근마켓 사무실 근무 모습 /당근마켓

MZ세대를 중심으로 좋은 직장, 가고 싶은 직장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간판과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대기업 선택을 당연하게 여기던 기성세대와 달리 이씨 같은 MZ세대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확실한 보상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채용 시장의 선호 지형도도 완전히 바뀌고 있다.

본지가 채용 스타트업 원티드와 함께 원티드 고객사 1만곳 중 채용 규모가 50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기업들을 조사한 결과, 지원 경쟁률 상위 20곳 기업 모두 스타트업이었다. 경쟁률 1위는 당근마켓(중고거래앱), 2위 두나무(가상화폐 거래소), 3위 카카오스타일(옛 지그재그, 패션앱), 4위 아이디어스(수공예 플랫폼), 5위 에이블리(패션앱) 순서였다. 한 벤처캐피털 업체 관계자는 “요즘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도 대기업으로 여겨진다”며 “이젠 ‘넥스트 유니콘’을 찾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스타트업 모임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지난달 조사에서도 대학생 가운데 스타트업 취업을 희망하는 비율이 30.5%로 전년보다 7.5%포인트 올랐다. 이들은 빠른 성장으로 인한 성취감(31.1%)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24.6%)를 스타트업 선택의 이유로 꼽았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은 “꼭 뽑아야 하는 능력을 가진 우수 학생들의 진로 선호도를 파악해 보니 창업과 구글·페이스북·스타트업 취업이 최우선이었고 그다음이 네이버·카카오, 삼성전자·SK텔레콤 같은 대기업은 3순위가 됐다”고 했다.

스타트업이 MZ세대를 빨아들이는 것은 스톡옵션 같은 획기적인 보상과 성과에 맞는 파격적인 연봉 인상률이라는 요소도 크다. 구글·아마존·페이스북 같은 실리콘밸리 IT 기업의 방식을 벤치마킹한 한국 스타트업들이 우리 기업들의 보상 문화를 바꿔놓은 것이다. 채용 플랫폼 원티드에 따르면 국내 유니콘 13곳의 올해 평균 신입 초봉은 3904만원으로 지난해 기준 대기업 평균 대졸 초임(4690만원)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회사 성장에 기여한 직원들에게는 상상을 뛰어넘는 보상이 주어진다. 핀테크 스타트업 토스는 2018년 말 전 직원에게 1억원 상당의 스톡옵션을 제공했다. 3년간 회사 주식 가치가 5배가량 뛰면서 이들이 받은 주식 가치도 5억원 수준으로 올랐다.

연봉 인상률도 파격적이다. 한 IT 콘텐츠 스타트업은 3500만원이던 2019년 4~6년 차 직원의 평균 연봉을 올해 6360만원으로 82%나 올려줬다. 한 유통 스타트업은 4~6년차 연봉을 최근 2년 연속 연평균 14% 인상했다. 부동산 중개 스타트업 직방이 지난 2월 개발자 초봉을 2000만원 올리고 1억원 상당 계약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직방 관계자는 “지난달 500명이 넘는 개발자 지원자가 몰렸다. 올 1월보다 6배가 넘는 수치”라고 했다.

핀테크 스타트업 토스 직원들이 회의를 하는 모습. /토스

대기업과 다른 조직 문화도 MZ세대가 스타트업을 찾는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최근 IT 대기업으로 통하는 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개발자들이 여행 스타트업 마이리얼트립으로 대거 이직해 업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이직자는 “스타트업에서는 아이디어를 낸 직원이 연차와 상관없이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토스에서는 입사 1년 차인 20대 개발자가 팀원 30명을 이끄는 리더(팀장)가 됐다. 카카오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하다가 2019년 자기개발앱 ‘챌린저스’로 이직한 박혜진씨는 “카카오만 해도 회사가 규모가 커서 내가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서 “현재 회사에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신만의 비전을 실현하고 있는 야심 찬 능력자들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