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지난 1년 동안 중국 내 생산 공장을 9곳에서 4곳으로 줄였다. 스마트폰 사업 철수,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영향도 있지만 최근 악화되는 미·중 갈등 상황을 고려한 ‘탈(脫)중국’ 차원의 셈법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LG전자는 올 초에는 중국 난징(南京)의 전기차 부품 공장 증설을 위해 34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선제적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LG전자가 최근 중국에서 보여준 상반된 모습은 미·중 두 강대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배터리 산업의 공급망 재편을 서두르는 미국의 투자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동시에 최대 소비 시장이자 생산 기지인 중국의 눈치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국내 IT 대기업 임원은 “미국 정부의 정책을 따랐다가 언제 중국으로부터 공장 폐쇄나 영업 정지와 같은 보복을 당할지 몰라 난감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장 고민이 큰 건 반도체 업계다. 삼성·SK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최근 미 상무부가 요구한 반도체 판매 정보 제출 시한을 앞두고 막판까지 고심을 해야 했다.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 고객사에 대한 정보를 포함시키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중국 매출 비율(30.22%)이 가장 높았다. 올해 연간 매출에서도 3년 만에 북미 지역 매출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최근 배터리 업계에선 “최악의 경우 중국산 원자재 수입이 막힐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이 양극재·분리막 같은 주요 배터리 원자재 생산의 60~70%를 차지하고 있는데 중국이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를 빌미로 이들 원료 가격을 일방적으로 올리거나 공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서 대거 생산하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도 미·중 갈등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OLED는 미국이 열거한 첨단 전략 기술에 공식적으로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반도체·AI(인공지능)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장비 업체 대부분이 반도체와 겹치는 영역들이 있다 보니 언제든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