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를 대체하는 곰팡이 단백질, 잡초만 콕 집어 제초제를 분사하는 로봇, 나무찌꺼기로 만든 전시 부스….

오는 5일(현지 시각)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2′를 가로지르는 화두는 ‘친환경’이다. 올 한 해를 좌우할 첨단 기술을 선보이는 CES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누가 더 친환경을 잘하나’를 경쟁하는 듯한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CES가 ‘소비자 환경 쇼(Consumer Environment Show)’가 됐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CES 2022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세계 최대 농기계 업체 존 디어의 친환경 제초 기술‘See & Spray’는 로봇과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잡초에만 정확히 농약을 뿌려 제초제 사용량 80%를 줄이는 기술이다. /존 디어

◇'친환경 경연장’이 된 CES

2일까지 공개된 CES 최고 혁신상 15개 가운데에도 친환경을 앞세운 기술들이 여럿 포함됐다. 세계 1위 농기계 업체인 존 디어는 로봇·컴퓨터 비전·머신러닝(기계학습)의 기술을 결합해 잡초에만 정확하게 농약을 뿌리는 기술(see & spray)로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기존에 무작위로 뿌릴 때보다 제초제 사용량을 80%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캐나다 스타트업 오토도 물 사용량을 50% 절감할 수 있는 ‘스마트 스프링클러’로 수상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설정한 지점에만 정확히 물을 뿌려 물 낭비를 줄인 기술이다. 이 밖에 물·에너지 사용량의 80%를 줄여 가구당 연간 500달러(약 60만원) 이상의 비용 절감이 가능한 ‘레인스틱 샤워기’, 해상 풍력과 수중 수압차를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저장하는 ‘오션 배터리’ 등 다양한 친환경 기술들이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국내 기업들도 일제히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웠다. 삼성전자 신임 대표이사 한종희 부회장도 4일 CES 기조연설 무대에 올라 친환경을 강조할 예정이다. 연설 주제는 ‘공존의 시대(Age of Togetherness)’.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후변화를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한 삼성의 노력을 소개하고 참가자들에게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동참해줄 것을 호소할 예정”이라고 했다.

LG전자는 2000㎡(약 600평) 크기의 대규모 전시 공간을 접착제 없이 나무찌꺼기를 압착해 만든 합판, 페인트·니스를 칠하지 않은 미송 합판 등 재활용 자재로 만들었다. 또 부스 디자인을 간소화해 전시회가 끝난 이후에도 쉽게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SK그룹은 아예 참가 주제가 ‘탄소 감축’으로 전시관을 숲처럼 꾸민다. SK텔레콤은 전력 소모를 크게 줄인 인공지능 반도체 ‘사피온’을 공개하고, 기지국과 네트워크망 전력 사용량을 50% 이상 아낄 수 있는 ‘싱글랜’ 기술도 선보인다.

‘탄소 감축’을 주제로 전시장을 숲처럼 꾸민 SK그룹의 CES 전시장 모습. /SK

◇'친환경’ 해야 투자자·고객 잡아… 무분별한 유행 우려도

올해 CES 전시 분야로 새롭게 ‘푸드 테크’가 추가된 것 역시 친환경의 영향이다. 대표 참가 기업인 임파서블푸드는 2011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기술 기업으로 콩 등을 재료로 식물성 고기를 만든다. 이들은 식물성 고기를 활용하면 소를 직접 사육⋅도축할 때보다 땅과 물을 적게 사용하고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스타트업인 네이처스파인드는 콩으로 만든 고기를 넘어, 곰팡이와 자체 발효 기술로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단백질을 전시회에서 선보인다.

CES에서 친환경이 화두가 된 것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과 맞물려 있다. 블랙록 등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들은 좋은 실적을 넘어 기후변화 대응, 건전한 지배구조 등 지속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투자의 핵심 지표로 삼고 있다. MZ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소비자들 역시 조금 더 비싸더라도 ‘친환경’을 추구하는 기업에 지갑을 열고 있다. 다만 한 재계 관계자는 “진지한 고민 없이 보여주기식으로 ESG 광풍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했다.

한편 CES를 주최하는 CTA(미국소비자기술협회)는 최근 오미크론 여파로 기존 5일부터 8일까지였던 행사 일정을 7일까지로 하루 단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