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의 제왕 마이크로소프트(MS)가 IT 업계 사상 최고액인 687억달러(81조9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최대 게임 개발 업체인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인수한다.
MS는 18일(현지 시각) “액티비전 블리자드 주식에 45% 프리미엄을 붙여 전액 현금으로 매입하기로 했다”며 “이번 인수로 MS는 중국 텐센트, 일본 소니에 이어 매출 기준 3위 게임사로 올라선다”고 밝혔다. 인수 가격 687억달러는 2016년 컴퓨터 업체 델이 데이터 저장 업체 EMC를 인수할 때 썼던 670억달러를 넘어선 테크 업계 M&A(인수합병) 역대 최고가이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등을 출시한 블리자드와 콜오브듀티를 내놓은 액티비전이 2008년 합병한 게임사다. 전 세계적으로 매달 4억명이 액티비전 블리자드 게임을 즐긴다.
◇게임으로 메타버스 전략 수정
‘세기의 빅딜’로 불리는 이번 인수로 MS의 게임 사업은 날개를 달게 됐다. MS의 콘솔 서비스 ‘엑스박스’와 다수의 유명 게임을 보유한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현재 엑스박스의 콘솔 시장 점유율은 약 25%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70%)에 밀리고 있다. 하지만 MS가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 IP(지식재산권)와 게임 개발 능력을 활용하면 단숨에 게임 시장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MS가 모바일과 PC, 콘솔 게임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회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인수 소식이 전해지자, 소니 주가는 전날보다 7.17% 폭락했다.
MS의 과감한 베팅에는 앞으로 다가올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명확한 의도가 있다. 메타(페이스북), 애플, 구글 같은 글로벌 빅테크들은 아직 초기 단계인 메타버스가 게임을 통해 본격적으로 구현될 것으로 보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가장 손쉽게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분야가 게임이라는 것이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게임은 오늘날 모든 플랫폼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엔터테인먼트 분야”라며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가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MS는 이미 메타버스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는 MR(혼합현실) 안경인 홀로렌즈를 출시했고, 사무용 협업 툴에도 메타버스 기능을 도입했다.
지난해부터 사내 스캔들로 위기를 겪어온 액티비전 블리자드도 MS에 인수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최근 사내 성추행과 집단 괴롭힘 사태로 핵심 개발자 30여 명이 퇴사하고 40여 명이 중징계를 받았다. 이 여파로 올해 예정됐던 ‘디아블로4′, ‘오버워치2′ 등 대작 게임 출시 시점이 2023년으로 연기됐다. 뉴욕타임스는 “스캔들이 없었다면 블리자드가 인수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경쟁사 주춤하는 사이 진격하는 MS
테크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에 대해 “MS가 구글·애플·메타 같은 경쟁 빅테크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미 의회와 유럽연합(EU)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반독점 규제의 타깃이 되면서 최근 사업 확장세가 한풀 꺾인 상황이다. 반독점 규제 도입에 따라 애플과 구글의 핵심 수익 모델인 앱장터 독점도 속속 깨지고 있다. 반면 1998년 인터넷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와 윈도의 끼워팔기로 반독점 규제를 받아 기업 분할 위기를 겪었던 MS는 이번 독점 논란에서 한발 떨어져 있다.
MS는 이런 상황을 활용해 사업 영역을 급속도로 넓히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의료 분야 음성인식 서비스 업체 뉘앙스를 22조원에 인수했고, 12월에는 미 약국 체인인 CVS와 손잡고 맞춤형 의료 클라우드 서비스에도 진출했다. 최근에는 영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웨이브, 통신용 반도체 업체 퀄컴 등과 손잡고 하드웨어 시장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MS가 이르면 올해 애플의 뒤를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시가총액 3조달러 기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시가총액이 2조2700억달러 수준인 MS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