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거래 앱 1위 ‘당근마켓’에서 10대 의류를 검색하면 2위 업체인 ‘번개장터’의 워터마크가 찍힌 사진이 많이 보인다.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가 번개장터 앱에 물건을 먼저 올렸다가 당근마켓에 다시 올리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전 연령대가 고르게 쓰는 당근마켓과 달리 번개장터는 10~20대의 Z세대 이용자가 전체의 54%를 차지한다. 실제로 지난해 번개장터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상품은 Z세대가 즐겨 쓰는 아이폰, 닌텐도 스위치 같은 디지털 기기(230만건)였고, 스니커즈와 연예인 ‘덕질’ 아이템도 인기 품목이었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Z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와 상품을 강조한 전략 덕분에 Z세대 사이에서 유독 인기가 높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Z세대의 독특한 앱 선택

Z세대에서 특정 앱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용자가 많은 1위 앱 대신 Z세대의 성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앱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Z세대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동체(앱)에 속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비대면 소통에 최적화 된 앱을 원한다”고 했다.

이커머스 분야에서 Z세대가 선택한 앱은 판매자가 직접 물건을 맞춤형으로 만들어 파는 수공예품 장터앱 아이디어스다. 1020세대가 전체 사용자의 52%를 차지한다. ‘개취(개인의 취향)’를 중요하게 여기는 Z세대가 ‘작가가 나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준다’는 점에 매료된 덕분이다. 빠른 배송이 승부를 가르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느린 배송’이란 약점에도 누적 앱 다운 1300만, 월간 활성 사용자(MAU) 400만명의 인기 앱으로 자리 잡았다. 토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왓챠는 ‘넷플릭스에 없는 콘텐츠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젊은 층의 취향을 공략한 덕분에 Z세대 사용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

부동산 앱에서는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가 Z세대 사이에서 직방·네이버 부동산보다 인기다. 피터팬은 다른 앱과 달리 100% 비대면 부동산 직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테리어 앱은 3040세대가 주로 쓴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VR(가상현실) 집 꾸미기를 내세운 룸플래너·플래너5D 등은 Z세대에게 가상공간 놀이 앱으로 인기를 얻었다. Z세대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 앱도 가려서 쓴다. 게더타운과 같이 화상회의나 교육이 강조된 앱 대신 순수한 재미를 위해 모이는 로블록스·플로타콘·제페토 이용자가 많다.

◇앱 시장 판도까지 바꿔

Z세대의 선택을 받은 앱은 시장 지위가 급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6월 출시한 심부름 서비스 앱인 ‘해주세요’는 출시 5개월 만에 30만 다운로드를 달성해 시장 2위 업체였던 ‘김집사’(1020세대 비율 12%)를 제쳤다. 이 앱은 Z세대 사용자가 전체의 62%를 차지한다. ‘해주세요’를 출시한 조현영 하이퍼로컬 대표는 “앱 명칭이 귀엽고 개인 간 소통을 쉽게 만든 것이 인기 비결”이라고 했다. 패션 전문 플랫폼 무신사도 64%에 이르는 1020세대 이용자의 힘을 앞세워 업계 1위가 됐다. 명품 커머스 앱 빅3로 불리는 발란·트랜비·머스트잇 가운데 1020세대 이용자 비율이 가장 높은 머스트잇도 업계 최초로 누적 거래액 1조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해외에서도 Z세대가 앱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중국 Z세대는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을 마다하고 1990년대 후반에 출시한 QQ메신저를 주로 쓴다. 위챗보다 투박하지만, 이모티콘을 직접 제작해 쓸 수 있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25일 “2007년 설립된 이후 한동안 외면받은 미국 소셜미디어 텀블러가 사용자 절반을 Z세대로 확보하며 다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Z세대를 잡기 위해 별도 앱을 출시하는 회사들도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모바일 앱 안에 ‘헤이영(Hey Young)’이란 플랫폼을 별도로 만들어 18~29세를 대상으로 각종 금융 상품과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은행 또한 지난해 11월 모바일 앱에 MZ세대를 위한 ‘펀 타입’ 페이지를 따로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