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망(網) 이용료를 둘러싸고 촉발된 SK브로드밴드(SKB)와 넷플릭스 간 다툼이 글로벌 통신업계와 미국의 빅테크 기업 간 갈등 양상으로 판이 커지고 있다.

현재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국내 기업들이 통신업체에 망 이용료를 따로 내는 반면, 넷플릭스는 막대한 데이터 트래픽에도 불구하고 망 이용료를 부담하지 않고 있다. 이에 여야 의원들이 세계 최초로 넷플릭스처럼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사용하는 IT(정보기술) 기업에 의무적으로 망 사용료를 내게 하는 법안들을 잇따라 발의했고, 유럽 통신업체들도 망 투자비 분담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맞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주한 미국 대사관은 한국의 입법 논의에 우려를 표명하고, 같은 처지인 구글도 넷플릭스 측면 지원에 나섰다. 여기에 다음 달 방한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넷플릭스 한국 지사 방문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망 이용료 문제가 한미 정상 간 어젠다로 다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한국 소식에 유럽·GSMA도 행동 나서

법정 다툼은 지난 2020년 넷플릭스가 망 이용료를 요구하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서 자신들은 책임질 채무가 없다는 점을 확인받으려고 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해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그러는 사이 국회에선 지난해에만 망 사용료 의무화를 골자로 한 법안이 6건이나 발의됐다.

유럽 통신업계도 행동에 나섰다. 독일 도이치텔레콤, 프랑스 오렌지, 스페인 텔레포니카, 영국 보다폰 등 유럽 내 대표적 통신업체 CEO들은 지난 2월 중순 유럽연합(EU) 의회에 서한을 보내 “빅테크 기업들도 망 확장 비용을 의무적으로 분담하는 법안을 만들어 달라”며 “몇 안 되는 빅테크 기업의 온라인 동영상·소셜미디어 서비스들이 전체 데이터 트래픽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비슷한 시점에 오스트리아의 통신 3사 CEO들도 공동성명을 내고,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데이터 폭증 때문에 매년 망 투자에 약 7억유로(9300억원)나 부족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750여 개의 통신업체를 회원으로 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지난달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이사회 때 이 사안을 정식 안건으로 채택해 논의했다. 각 국가마다 정부 주도의 망 투자 펀드를 만들고 여기에 빅테크 기업들이 돈을 내는 형태로 참여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구글은 넷플릭스 지원…美 정부도 우려 표명

그러자 미국 구글이 한국 내 상황 반전을 위해 나섰다. 국회에서 망 이용료 의무화법이 실제로 통과되면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도 대상이 된다. 과기정통부가 지난해 10~12월 주요 IT 기업들의 하루 평균 데이터 트래픽을 측정한 결과, 구글이 국내 전체 트래픽의 27%를 차지했다.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은 “망 이용료 의무화 법안이 실제 입법화된다면 유튜브가 한국 크리에이터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법이 통과되면 한국 내 투자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미국 USTR은 최근 발간한 ‘2022년 각국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망 이용료 의무화)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의 국제무역 의무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했고, 델 코르소 주한 미국 대사 대리는 최근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주최 행사에서 “해외 기업들의 혁신과 투자가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넷플릭스 한국 지사 방문을 검토 중이란 소식이 나오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표면적으론 “‘오징어게임’ 등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성공을 한 것처럼 미국과 한국의 협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방문 일정”이란 해석이 나오지만, “국회 입법 과정에 영향을 주려는 복선이 깔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인수위 관계자는 “망 이용료 문제가 한미 정상회담의 어젠다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