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허 중국 부총리가 17일 전국정치협상회의가 주관한 회의에 참석해 빅테크의 발전과 상장을 돕겠다고 밝혔다. /중국CCTV캡처

시진핑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류허(劉鶴·70)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17일 “플랫폼 경제와 민영 경제의 지속적이고 건전한 발전을 지지한다”면서 자국 빅테크 지원을 약속했다. 류 부총리는 이날 정책 자문 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주최한 민관 회의 연설에서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한다”면서 빅테크에 우호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회의에는 중국판 네이버인 바이두의 리옌훙 창업주, 중국 최대 사이버 보안 업체 치후360의 저우훙이 회장 등 100여 명의 경제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시장에선 중국 정부가 ‘빅테크 때리기’에서 ‘빅테크 품기’로 정책 기조를 바꾼 것으로 받아들였다. 미국·홍콩 증시에 상장한 중국 빅테크 주가도 이날 2~5% 올랐다. 특히 최근 중국 정부의 집중 단속 대상이 된 알리바바(이커머스)·디디추싱(차량 공유) 주가는 한때 8~9% 치솟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빅테크에 대한 중국 정부의 규제가 끝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고 평했다.

◇멈춰 선 빅테크 때리기

중국의 빅테크 때리기는 2020년 하반기부터 계속됐다.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 기업인 앤트그룹의 상하이·홍콩 상장을 중단시켰고,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데이터 보안을 이유로 디디추싱 등 중국 기업의 미 증시 상장에도 제동을 걸었다. 각종 규제가 쏟아지면서 텐센트(게임 규제), 가오투(사교육 규제), 메이퇀(배달원 고용 문제) 등 중국 대표 IT 기업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고, 결국 대규모 감원까지 이어졌다.

기조 변화는 올해 들어 감지됐다. 3월 16일 류 부총리는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 특별 회의를 열고 “대형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정돈 작업을 최대한 빨리 끝내라”면서 “플랫폼 기업에 적색등뿐 아니라 녹색등도 켜줘야 한다”고 언급해 주가 하락을 멈춰 세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정부가 지난해 강조했던 ‘공동부유(평등하게 잘 살자)’는 주요 정부 보고에서 언급조차 안 될 만큼 사라졌다”고 했다.

◇경제 상황 악화 속에 빅테크에 SOS

중국 정부의 빅테크에 대한 정책 기조 변화는 최근 중국 경제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중국 정부는 1~2월 인프라 투자를 대폭 늘려 경제를 부양했지만, 지난달 발표한 1분기 경제성장률은 4.8%로 중국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인 5.5%에 못 미쳤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3월 시작된 상하이 코로나 봉쇄로 외국 투자자의 중국 철수가 가속화됐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에너지·식량 가격마저 급등하며 경제 환경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올가을 시진핑 주석의 3기 집권을 확정할 20차 당 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빅테크 살리기’를 통해서라도 경제를 띄워야 하는 상황이다. 대만 왕보(旺報)는 “규제 완화는 빅테크들의 감원 열풍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다”면서 “정부 기조 변화는 최근 상하이 봉쇄 기간에 메이퇀·징둥 등 빅테크들이 빠른 배송 시스템을 통해 고립된 주민을 도운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류 부총리가 두 달 사이 두 번이나 빅테크 지원 발언을 한 만큼 중국 빅테크에 대한 과격한 규제는 당분간 완화될 가능성 높다. 글로벌 투자사들은 벌써 중국의 규제 완화에 베팅하고 있다. 16일 블룸버그는 투자 은행 JP모건이 중국 빅테크의 주가 목표치와 투자 등급을 상향 조정했다고 보도했다. JP모건은 지난 3월 ‘매도’ 의견을 냈던 13개 종목 중 텐센트·알리바바·메이퇀·핀둬둬·넷이즈·아이치이·딩둥 등 7개 종목을 ‘매수’로, 징둥닷컴·바이두·베이커·비리비리·즈후·바오준 등 6개 종목은 ‘중립’으로 변경했다. 이들 종목은 이커머스와 게임, 검색·배달·동영상 콘텐츠 등 각 분야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알렉스 야오 애널리스트는 “중국 당국의 규제 완화 기조에 따라 빅테크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예상보다 빨리 해소됐고, 지난해부터 주가가 크게 떨어져 악재가 이미 충분히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FT는 “중국 정부가 디디추싱·알리바바에 대한 지원이나 조사 중단 등의 실질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어 류 부총리의 말이 수사(修辭)에 그칠 수 있다는 불안은 여전하다”고 신중론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