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이 앱 소개글에서 “텔레그램은 영원히 무료이며, 광고도 구독료도 없을 것”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1일 텔레그램 개발진이 새 버전 정보를 공개하는 홈페이지에 따르면, 조만간 선보일 아이폰 새 버전 앱 소개글에는 이 같은 문구가 빠져 있다. 2013년 출시돼 ‘보안이 철저한 비밀 메신저’로 소문을 타며 전 세계 5억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한 텔레그램이 ‘무료 정책’을 슬그머니 없앤 것이다.
텔레그램은 매년 이용자가 급증해 운영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조만간 기업용 채널, 유료 이모티콘 등 부분 유료화 서비스를 선보일 전망이다.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도 지난 2020년 “회사 성장에 최소 연간 수억달러가 필요하기 때문에 유료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IT 업계에 영원한 약속은 없다”
IT 업계에 ‘영원한 약속’이란 없는 것일까. 글로벌 IT 기업들이 이용자들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창업 초기에 내세웠던 경영 철학, 전략들이 문제에 부딪히거나 성장에 저해가 될 경우 언제 그랬냐는듯 슬그머니 이를 바꾸는 것이다.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도 서비스의 상징과도 같았던 ‘무(無)광고’ 정책을 포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1분기 가입자 수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하고 주가가 폭락하자 부랴부랴 수익 확보에 나선 것이다. 지난 4월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가 이 같은 뜻을 밝혔고, 회사는 현재 중간광고를 붙인 저가 요금제를 별도로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드라마의 한 시즌을 통째로 올리지 않고 시차를 두고 나눠서 올리기 시작했고, 타인과 계정을 공유하는 것도 막겠다고 예고했다. 이용자들 사이에선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시간에 광고 없이 이용한다’는 것을 모토로 내세웠던 넷플릭스가 약속을 저버렸다는 불만이 나온다.
◇원칙 접은 이후 수익성은 좋아져
IT 기업들이 원칙을 접는 것은 수익과 관련이 크다. 카카오는 2012년 “카카오톡이 유료화를 감행할 것”이란 소문이 돌자, “카카오톡은 유료화를 할 계획이 전혀 없다. 카카오톡에 광고 넣을 공간도 없고 쿨하지도, 예쁘지도 않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카카오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9년 결국 카카오톡에 광고를 붙였다. 이용자 불만이 제기됐지만 그 이듬해인 2020년 카카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21% 증가한 456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도 매년 1조원씩 성장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지독한 ‘펜 반대론자’였다. 2007년 아이폰 공개 행사에서 ‘누가 스타일러스 펜을 원하나요?’란 문구를 띄워놓고 “신이 인간에게 펜(손가락)을 10개를 줬는데 누가 펜을 따로 쓰는가?”란 질문을 던질 정도였다. 하지만 잡스 사후, 애플은 펜을 꺼내들었다. 2015년 태블릿용 ‘애플펜슬’을 출시한 것이다. 그 결과 펜으로 필기와 그림 그리기를 원하던 이용자들을 확보하면서, 애플은 글로벌 태블릿PC 시장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올 1분기 글로벌 태블릿 시장은 애플(39%)이 삼성전자(20%)의 2배 수준이다.
삼성전자도 2020년 애플이 환경보호를 이유로 충전기를 제외한 채 ‘아이폰12′를 출시하자, “당신의 갤럭시에는 (충전기가) 포함돼 있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며 애플을 조롱했다. 하지만 이듬해 삼성전자도 애플처럼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갤럭시S21)에서 충전기를 빼면서, “결국 원가절감을 위해 애플을 따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