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그룹인 삼성은 지난달 반도체·바이오를 중심으로 향후 5년간 450조원을 투자하고, 8만명을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SK그룹 역시 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5년간 247조원을 투자하고 5만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목표는 내놨지만, 두 그룹사는 내부적으로 반도체 채용 목표를 실제로 달성할 수 있을지 고심 중이다. 한 고위 임원은 “최근 IT 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앞다퉈 ‘임금 경쟁’을 벌이면서 공대 출신을 많이 뺏기고 있다”며 “반도체 기업들은 지방에 있고 공장 근무도 해야 하다 보니 청년층이 취업을 꺼려 임금과 복지를 아무리 올려도 원하는 만큼 인력을 뽑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했다.

세계 1, 3위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반도체 강국’ 한국에서 반도체 업계는 고질적인 인력난(難)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매년 약 1600명의 인력이 부족하지만, 대학에서 배출되는 관련 전공 졸업생은 650명뿐이다. 특히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석·박사급 인력은 그중에서도 150여 명에 불과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우수 인재는 의대 등으로 가고 반도체 소자 개발이나 회로 설계 같은 전공은 아예 지원자가 드문 상황”이라고 했다.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전자·재료·물리·화학 전공자들은 배터리, 디스플레이, 철강 등 다른 업계에서도 경쟁적으로 채용해 ‘산업 간 인재 쟁탈전’이 치열한 상황이다. 중소·중견 반도체 기업들도 “대기업들이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거의 연구실 단위로 집단 채용을 하다 보니, 중소기업들이 뽑을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반도체 업계는 자구책으로 ‘계약학과’를 잇따라 만들고 있다. 기업이 대학에 전액 비용을 대고 ‘정원 외(外)’로 필요한 인재를 위탁해 키우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운영에 참여한 반도체 계약학과는 총 7곳, 260명 규모다. 하지만 기업이 비용을 대지 않으면 바로 운영이 멈추는 데다, 대학들도 계약학과를 위해 따로 정식 교수를 채용하지 않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낮아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