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기축통화(국제 금융 거래의 기본 통화)를 꿈꿨던 가상화폐가 경제 위기 속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작년 11월만 해도 ‘디지털 시대의 금’이라고 불리며 인플레이션의 헤지(hedge·위험 분산) 수단으로 꼽혔지만, 7개월 만에 세계 대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3분의 1 토막 나는 등 경제 위기 속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산 가상화폐 테라·루나의 폭락과 가상화폐 금융기관 셀시우스의 인출 중단 사태까지 잇따라 터지면서, 신뢰 위기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직장인, 노인, 주부 가릴 것 없이 558만여 명이 ‘묻지 마 투자’에 뛰어들었던 한국에서도 ‘코인 버블’이 터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며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3천만원선이 무너진 가운데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연합뉴스

◇가상화폐, 끝없는 추락

가상화폐 가격은 끝없이 미끄러지고 있다. 가상화폐 정보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 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13일 1조달러(1286조원) 선이 무너진 데 이어 14일에는 9000억달러 선까지 내려앉았다. 작년 11월 3조달러에 육박했지만 불과 7개월 새 70%가 폭락하며 2조달러 이상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더 문제는 소위 ‘잡코인’이 아닌 가상화폐의 양대 산맥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하락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개당 가격이 6만8000달러에 육박했던 비트코인은 현재 2만2000달러 아래로 주저앉았고, 이더리움(4800달러대→1200달러대) 역시 비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개월 새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시가총액은 각각 66%, 74% 폭락했다. 주요 가상화폐와 전체 시장이 나란히 3분의 1 토막 났는데도, 시장에선 “비트코인 가격이 2만달러 밑으로 더 떨어질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14일에도 전일 대비 18% 이상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하락세는 미 소비자물가지수가 4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인플레이션 위기에 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속도가 점차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 겹치며 위험자산인 가상화폐에 대한 불안 심리가 커진 결과로 해석된다.

◇테라에 셀시우스까지… 신뢰 위기 봉착

더 큰 문제는 가상화폐 자체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깨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한국산 가상화폐인 테라, 루나의 가격이 99% 폭락 후 상장폐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데다, 13일에는 미국 가상화폐 담보 대출 서비스인 셀시우스가 “극단적인 시장 상황”을 이유로 고객 자산 인출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기에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3시간가량 비트코인 인출을 중단했다가 재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바이낸스는 ‘일시적 기술 오류’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시장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비트코인, 1년6개월만에 2000만원대로 -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에 있는 가상 화폐 거래 업체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세계 최대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비트코인 개당 가격은 3000만원 아래로 떨어지며, 2020년 12월 말 이후 1년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지호 기자

비트코인을 신뢰하며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삼았던 기업들은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블룸버그는 13일 빚까지 내가며 비트코인에 투자해온 미국의 한 소프트웨어 업체가 비트코인 가격 폭락으로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봤다고 보도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지난 2년간 현금 대신 비트코인 보유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리며 총 39억7000만달러를 쏟아부었는데 그게 독이 된 것이다. 작년 비트코인을 세계 최초로 법정 화폐로 도입하고 국고로 투자를 지속해 온 엘살바도르 역시 비트코인이 연일 폭락하면서 손실이 불어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도 가상화폐는 주요 경제 주체인 2040세대가 빚까지 내가며 투자해온 주요 자산 중 하나였다. 이들은 전체 투자자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1억원 이상 투자한 이들도 9만4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