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박물관인 베이징의 ‘중국국가박물관’은 지난 2일 개관 110주년 특별 전시회를 열었다. 주제는 ‘적후류광(積厚流廣·깊이 있는 축적, 광범위한 영향)’. 중국 역사의 각 시기를 대표하는 유물 240여 점을 엄선한 전시다. 박물관은 이를 위해 개관 이래 최초로 ‘디지털 유리창’을 도입했다. 관람객이 유리창을 터치하면 창 너머 유물의 상세 설명과 확대 영상, 360도 회전 이미지 등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디지털 유리창 하나는 LG디스플레이의 55인치 투명 디스플레이 6개를 이어 붙여 만들었다. 중국 매체들은 “고대 유물이 첨단 과학을 만나 살아났다”고 평가했다.
◇세계 곳곳서 ‘차세대 유리창’ 자리매김
투명 디스플레이가 최근 세계 곳곳에서 ‘차세대 유리창’으로 자리매김하며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전시관 유리창, 열차 창문, 사무실·매장 칸막이 등 기존의 유리창 대신 투명 화면을 통해 각종 정보나 광고를 띄우는 ‘디지털 캔버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상용화된 대형 투명 디스플레이는 2019년 선보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제품으로, 투명도는 ‘틴팅(tinting·선팅)’한 창문과 비슷한 40% 수준이다. 55인치 투명 OLED 판매가는 2000달러(약 250만원) 안팎으로, 일반 OLED의 4배다. 컨설팅 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세계 투명 디스플레이 시장 규모는 올해 1억달러(1300억원)에서, 2030년 100억달러(13조1400억원)로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투명 디스플레이의 주요 적용 대상은 지하철·열차 등 교통수단이다. 2020년 8월, 세계 최초로 중국 베이징·선전의 지하철에 ‘디지털 창문’이 탑재됐다. 다음 역이 가까워지면, 디지털 창문에 도착역의 출구·화장실 등 세부 정보와 전체 노선도가 나타난다. 작년 4월엔 일본 아키타현~아오모리현 관광열차에도 디지털 창문이 시범 도입됐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주차 사업 부문은 작년 9월부터 국내 가맹 주차장 일부에 투명 디지털 안내판을 설치했고, 경기도는 지난달 정부 승인을 받아 도내 버스에 디지털 유리창을 설치하고 광고를 내보낼 예정이다.
빵집·옷가게·파티장 등 생활 공간에도 투명 디스플레이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 5월 SPC가 경기도 판교에 문을 연 ‘랩(Lab) 오브 파리바게뜨’에는 간판부터 벽면 장식, 제빵실 칸막이에까지 투명 디스플레이 38개가 적용됐다. 패션 스타트업 무신사가 지난달 서울 홍대에 연 첫 번째 오프라인 매장에선 곳곳에 설치된 투명 디스플레이에서 패션 모델들이 걸어다닌다. 서울 여의도 LG디스플레이 사무실의 ‘디지털 유리벽’은 회의 때마다 모니터로 변신한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선, 투명 디스플레이가 가상현실 시장 확대와 맞물려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가상 수족관, 동물원 등 각종 가상현실을 보여주는 최적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국제 방송미디어음향조명기기 전시회에선 투명 디스플레이로 만든 ‘가상 수족관’이 등장했다. 투명 화면에, 대형 어항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영상을 띄운 것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멸종한 동물이나 백상어 등 희귀 동물을 보여주는 ‘가상 동물원’도 만들 수 있다.
◇중국 BOE 등 추격 시작
세계 투명 디스플레이 시장은 현재 한국의 독무대다. LG디스플레이가 2019년부터 유일하게 대형 투명 OLED 디스플레이를 양산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기존에 임시 조직이었던 ‘투명 OLED 시장 창출 태스크포스(TF)’를 올해 정규 조직으로 격상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15년 투명 OLED 사업을 시작했다가 이듬해 사업을 중단했지만, 지금도 연구 개발은 지속하고 있다.
중국의 추격도 시작됐다. 정부 지원을 업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징둥팡)는 현재 투명 OLED 상용화 직전 단계에 이른 상태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투명 디스플레이 시장이 커지면 언제든 뛰어들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