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반도체 기업 인텔이 25일(현지시각) 대만의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인 미디어텍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밝혔다. 작년 3월 파운드리 사업을 재개한다고 밝힌 인텔이 대형 고객사를 유치하며 파운드리 시장 지각변동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렌디르 타쿠르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사장은 “연간 20억대 이상의 디바이스에 칩을 공급하는 미디어텍은 인텔 파운드리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파트너”라며 “인텔은 첨단 공정 기술과 지리적으로 다양한 생산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텍이 만든 스마트폰 AP 디멘시티. /미디어텍

◇물량으로 세계 1위 스마트폰 AP 설계 업체

미디어텍은 대만의 반도체 설계 회사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설계한다. 주로 중저가 스마트폰에 미디어텍의 칩이 탑재된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의 약 40%에 미디어텍 AP가 들어가고, 삼성전자 갤럭시A 일부 시리즈에도 탑재된다.

성능은 퀄컴이 만든 칩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탑재되는 물량은 많아 점유율이 높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전 세계 AP 시장에서 미디어텍은 점유율 33%로 1위를 차지했다. 퀄컴(30%), 애플(21%)보다 높다. 삼성전자의 엑시노스는 4%에 그쳤다.

그동안 미디어텍은 생산을 대만의 TSMC에 전량 맡겨왔다. 두 업체는 오랜 기간 밀월 관계를 유지했다. TSMC 출신 임원들이 미디어텍 이사회에 대거 합류했고, TSMC는 주문이 밀려있는 최신 4나노미터 공정에서 애플 다음으로 미디어텍을 챙겼다. 지난달 미디어텍은 퀄컴의 최신 칩보다 성능이 좋은 ‘디멘시티9000 플러스’를 발표하며 중저가를 넘어 고성능 AP 시장까지 노리고 있다.

일단 미디어텍은 첨단 칩의 경우 대만의 TSMC를 계속 이용하고, 스마트워치나 스마트 스피커 등 엣지 디바이스에 들어가는 칩 등은 인텔 파운드리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과 미디어텍은 구체적인 공정 수준과 생산 계획을 밝히진 않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선 인텔이 공정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16나노급인 ‘인텔16′ 공정으로 미디어텍 칩들을 일단 생산할 것으로 본다. 1년반~2년 내 양산에 돌입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인텔의 공정 수준이 올라오면 더 많은 미디어텍 물량을 생산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의 반도체 생산라인. /삼성전자

◇삼성전자에 위협 시작

반도체 업계에서는 작년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 진출을 선언하며 예상됐던 파운드리 업계 지각변동이 본격화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인텔은 작년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밝힌 ‘종합반도체기업(IDM) 2.0′ 전략을 발표하고 2024년부터 2나노급 첨단 공정으로 반도체 위탁 생산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인텔은 퀄컴, 아마존 등을 고객사로 확보한 상태다. 또 막대한 투자를 진행 중이다. 지난 3월엔 미국 애리조나에 200억달러를 투입해 반도체 생산 시설을 신설한다고 했고, 최대 1000억달러를 들여 미 오하이오주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68억유로 규모의 보조금을 받아 독일 마그데부르크에도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현재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대만의 TSMC가 53%, 삼성전자가 16%를 차지하고 있다. 인텔의 점유율은 1% 수준이다. 아직은 인텔과 삼성전자의 점유율과 기술 격차가 크지만 인텔이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기술력을 올리면 삼성전자와 고객 확보 경쟁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