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 업체 컬리는 지난 11일 싱가포르의 1위 온라인 식료품 쇼핑몰 ‘레드마트’에 마켓컬리 브랜드관을 열고 한국식품 판매를 시작했다. 레드마트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이커머스 기업 라자다 그룹의 계열사다. 컬리는 싱가포르를 발판 삼아 다른 동남아 국가로도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쿠팡도 창업 11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시장 진출에 나서면서 지난해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우고 한국과 비슷한 이커머스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싱가포르가 국내 기업의 신(新)남방 전략 거점이 됐다. 중국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동남아시아가 새로운 해외 시장의 대안으로 떠오르자 자금과 인력, 인프라를 갖춘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 진출의 발판이 된 것이다. 싱가포르의 인구(567만명)는 서울보다 적어 내수시장 규모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구매력은 높은 편이다.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약 5만9798 달러로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아시아 금융 허브로 홍콩이 매력을 잃으면서 싱가포르가 대안이 됐다”면서 “자본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기업 하기 좋은 환경 때문에 아시아 진출에선 싱가포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동남아 진출은 싱가포르부터 시작

국내 시장이 포화에 다다른 이커머스나 식품, 배달 업체의 싱가포르 진출이 특히 활발한 편이다. 도시형 국가이기 때문에 한국과 비슷한 물류망을 설치할 수 있고, 한국 문화와 음식에 대한 호감도 높아 국내 서비스와 제품이 진입하기 좋기 때문이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의장은 지난해부터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독일 딜리버리 플랫폼 딜리버리히어로와 합병한 이후 아시아 지역 공략을 본격화하면서 싱가포르를 중심지로 삼았다. 우아한형제들과 딜리버리히어로는 각각 50%씩 출자한 합작법인 ‘우아DH아시아’를 싱가포르에 설립해 아시아 15국의 배달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 싱가포르에 진출한 밀키트 업체 프레시지는 지난달 현지 주요 이커머스 기업 3사 쇼피·라자다·큐텐에 밀키트 제품을 입점시켰다. ‘피자 스타트업’으로 알려진 고피자는 2020년 싱가포르에 1호점을 설립하고 최근에는 현지에서 가맹 사업을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영어와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 4개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데 실제로 관공서나 직장에서 통용하는 제1언어가 영어라는 점도 다른 동남아 국가보다 유리하다. 싱가포르국립대, 난양공대와 같은 세계적인 명문 대학이 있어 인재 영입도 쉬운 편이다. 싱가포르의 투자은행 관계자는 “해외 법인은 현지인을 일정 비율 채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싱가포르 국내외 대학 출신 고학력 인력이 많아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해외 기업에 개방적, 기업 하기 좋은 나라

기업 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인 야놀자가 운영하는 야놀자클라우드는 지난 6월 싱가포르 식품 유통 기업 블루바스켓과 합작 법인 구스토엑스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오프라인 위주로 운영되던 음식점에 야놀자클라우드가 개발하는 서비스 소프트웨어를 적용할 예정이다. 서빙 로봇 스타트업인 베어로보틱스도 지난달 싱가포르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코로나 기간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떠나서 서비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공백을 로봇으로 메우기 위해서다.

싱가포르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 중 유독 스타트업이나 유니콘 기업이 많은 것은 규모에 상관없이 해외 기업에 개방적인 환경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2014년 대외 개방형 경제를 추진하는 ‘스마트 국가’를 비전으로 삼아 국적을 막론하고 혁신 기술을 지닌 스타트업을 적극 유치하고 투자하고 있다. 규제가 적은 데다가 일명 ‘기업 하기 좋은 분위기’도 여기에 일조한다. 싱가포르에서 번 돈을 외국으로 송금하는 데 크게 제약이 없는 데다가 법인세율도 17%로 한국보다 낮은 편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동남아 우버’라고 불리는 그랩도 말레이시아에서 창업했지만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겼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