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현지 시각) 독일 쾰른에서 열린 세계 3대 게임쇼 ‘게임스컴’ 전시장. 미국 포드가 자사 e스포츠 팀인 포드질라와 함께 차린 부스에 들어가보니, 레이싱카 운전석을 재현한 게임 좌석 ‘GT에디션 콕핏’이 보였다. 좌석에 앉아 경주용 차량을 몰아보니 노면의 거친 질감이 온 몸으로 전해졌고, 페달과 기어 조작감도 실제 차를 운전하는 듯했다. 포드 관계자는 “게이머들이 실제 레이싱 서킷에 있는 것처럼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라고 했다.
쾰른에서 열린 게임스컴을 비롯해 2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하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2′에는 게임용 테크 기기들이 대거 등장한다. 코로나 이후 게임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삼성전자나 포드 같은 비(非)게임 업체들이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폴 그레이 리서치 디렉터는 “올해 주목할 가전 분야는 TV와 게이밍 기기”라며 “단순 게임기를 넘어 게이밍 헤드셋, 셋톱박스, 스크린 등 다양한 기기로 시장이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게임 신시장 개척 나선 디스플레이 업계
게임스컴에선 게이머의 오감(五感)을 만족시킬 다양한 IT 기기가 등장했다. 대표 제품은 게이밍 모니터다. 25일 삼성전자 전시관에선 55인치 크기의 대형 게이밍 모니터 ‘오딧세이 아크’를 시연해보려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휘어진(curved) 대형 화면은 상황에 맞게 가로세로로 돌아가며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비디오 게임을 할 땐 가로로 돌려 널찍한 화면을 이용하고, PC 게임을 할 땐 세로로 돌려 상·중·하 3분할을 해 세 개의 화면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맨 아래 화면으로는 게임을 하고, 윗부분의 두 화면에는 유튜브나 게임 정보 웹사이트를 켜 놓는 식이다.
LG전자는 IFA에서 42인치 게임용 벤더블(bendable·휘어지는) OLED TV ‘플렉스’를 공개한다. 총 20단계의 세밀한 조절이 가능해, 원하는대로 화면을 자유롭게 구부렸다 폈다 할 수 있는 가변형 TV다. 예를 들어 TV를 볼 때는 평평한 화면으로 보다가, 몰입감이 중요한 게이밍 환경에선 곡률을 조절해 휘어진 화면으로 만드는 식이다. 별도 헤드셋 없이도 또렷한 목소리로 게이머들과 대화할 수 있는 마이크를 탑재했다. IT 업계 관계자는 “TV 시장이 수년간 제자리걸음을 하고, 최근 스마트폰마저 성장세가 꺾이면서 디스플레이 업계가 게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몰입감은 물론 최신 기능에 민감한 게이머들이야말로 업계 기술 경쟁에 최적화된 소비자”라고 했다.
◇오감만족 ‘게이밍 테크’
국내 스타트업 비햅틱스는 게임스컴에서 ‘무선 전신 촉각 슈트’를 선보였다. 소형 모터 40개가 탑재된 조끼를 입고 VR 슈팅 게임을 하면, 총을 맞은 부위에 진동이 전해지는 방식이다. 비햅틱스는 올 4분기(10~12월)에 출시할 ‘햅틱 장갑’도 전시했다. 슈트와 마찬가지로 손가락 끝에 부착된 10개의 작은 모터가 VR(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실제로 물건을 쥐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중국 바이트댄스의 계열사 피코는 4K 해상도를 구현하는 VR 헤드셋 ‘네오3 링크’를 선보였다. 이 헤드셋은 컴퓨터와 연결하지 않아도 100여 가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경쟁 제품인 메타의 ‘오큘러스 퀘스트2′보다 시야각이 넓은 것이 장점이다. VR기기는 시야각이 좁으면 마치 물안경을 쓴 것처럼 답답한 느낌을 준다.
상대적으로 느린 반응 속도 때문에 그간 게이머로부터 외면받았던 무선 제품들도 한층 개선된 성능으로 출전했다. 특히 슈팅·격투·리듬 게임처럼 재빠른 손동작이 필수인 게임들은, 이용자들이 무선 키보드·마우스 대신 유선 제품을 쓰는 경우가 많다. 기계식 키보드 업계 강자인 독일 체리는 유선 키보드와 비슷한 수준인 1ms(밀리세컨드·1000분의 1초)의 응답속도를 지닌 무선 키보드를 선보였다. 대만 에이수스는 AI(인공지능)가 주변 소음을 잡아 게이머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전달해주는 마이크를 탑재한 무선 이어폰 ‘로그 세트라 트루와이어리스 프로’를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