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어떻게 환경을 해치지 않으며 성장할 수 있을까?’
환경 포럼의 표어 같은 이 문구는 2일(현지 시각)부터 닷새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2′의 기조 연설 주제다. 유럽 2위 가전업체 아르첼릭의 하칸 불구를루 최고경영자(CEO)가 연사로 나선다. 아르첼릭은 연 매출 65억유로(약 8조8000억원)에 13곳의 자회사를 거느린 유럽 내 손꼽히는 기업이지만, 마케팅에선 성능·디자인이 아닌 ‘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운다. 전기·물 사용을 절감하는 세탁기와 폐어망으로 만든 오븐, 플라스틱병을 소재로 쓴 건조기가 대표 상품이다.
코로나 사태로 2년 만에 개최되는 IFA에서 ‘그린’이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친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Z세대가 점차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하는 데다, 고유가에 경기 불황으로 세계 TV·가전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며 ‘에너지 절감’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3일 기조연설 무대에 오르는 프랑스 슈나이더일렉트릭의 그웨나엘 아비스 휴에 최고전략책임자(CSO)도 “스마트홈 등 첨단 기술이 지구 에너지 절감의 열쇠”라고 했다.
◇유럽 가전전시회 ‘IFA’ 내일 개막 ‘그린’에 물든 가전 기업들
IFA는 미국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스페인 MWC(Mobile World Congress)와 함께 세계 3대 IT 전시회로 꼽힌다. 올해는 전 세계 50여 국, 1900여 곳의 기업이 참여해 첨단 기술의 향연을 펼친다. 한국에선 삼성전자·LG전자·코웨이·엔유씨·무역협회 등 160여 기업·기관이 참석한다.
이번 IFA는 AI(인공지능), 5G(5세대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 고사양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친환경을 누가 잘 추구하는지를 경쟁하는 듯한 모습이다.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는 기존 제품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20% 줄여주는 냉장고를 공개한다. 냉장고 내부 구석구석에 냉기를 쏴주는 ‘360도 쿨링’ 기술을 탑재해 신선식품 보관 가능 기간을 늘려, 결과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냉장고 내부의 70%는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또 일반 세탁기에 사용하는 물의 단 4%만 소비하면서, 25분 만에 옷을 청결하게 관리하는 ‘스팀’ 기능 세탁기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세계 1위 가전 기업인 LG전자와 삼성전자도 친환경 가전 경쟁에 뛰어들었다. LG전자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2도어 냉장고(모던엣지 냉장고)’를 공개하고, 폐전자기기에서 추출한 재생 플라스틱을 소재로 활용한 테이블형 공기청정기(퓨리케어 에어로퍼니처)도 선보인다. 삼성전자는 IFA에서 미세 플라스틱 저감 세탁기를 공개한다. “세제를 녹인 거품이 세탁물에 빠르게 스며들면서 옷감 마찰을 줄여, 세탁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 플라스틱 양을 최대 54%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삼성전자 생활가전 사업을 총괄하는 이재승 사장은 최근 “내년 말까지 거의 모든 생활가전 제품에 와이파이 기능을 탑재하고, AI(인공지능)를 통한 에너지 절감 기술을 넣겠다”며 “궁극적으로는 태양광 등 에너지를 각 가정에서 직접 생산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넷 제로 홈’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불황 속 깐깐해진 소비자…친환경 필수”
각종 친환경 기기를 들고 IFA에 데뷔하는 기업들도 많다. 프랑스의 신생 회사 프레아푸시는 LG전자의 식물생활가전 ‘틔운’과 비슷한 기능을 갖춘 ‘스마트 야채 재배기’를 선보인다. 해가 들지 않는 실내에서 방울토마토를 야외에서보다 3배 빨리 키울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바구니 형태의 기기로, 층층이 쌓을 수 있어 실내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미국의 잭커리는 태양광으로 충전하는 고용량 휴대용 배터리를 IFA에서 처음 공개한다. 야외에서 간이 태양광 패널을 연결하면 빠르게 전기를 생성한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올 하반기부터 경제 불황으로 가전 수요가 줄어드는 만큼 고객들의 기준이 더 깐깐해질 것”이라면서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해선 친환경이 ‘필수’가 됐다”고 했다.